Thu, May 30, 2024   
무서운 축하 꽃다발

05/22/23       한준희 목사

무서운 축하 꽃다발


몇주전, 모 교회 임직식에 갔다. 장로와 권사로 임직받는 분들을 축하해 주기 위해 오신 노회 목사님들과 축하객들이 예배당에 가득했다. 임직식이야 벌써 수십년을 보아온 예식이라 별다른 것이 없었지만 특이한 것은 한사람이 받기에는 너무 많은 축하 꽃다발이 임직자들에게 주어졌다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꽃다발을 다 들고 있을 수가 없어 발 앞에 놓아야 하는 모양새가 뭔가 좀 거슬린다고나 할까… 그렇게 축하받으면서 임직식이 끝났다.

몇년전 우리교회 장로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장례식을 집례했던 장소가 다시 기억된다. 당시 한인사회에 많은 일을 했던 장로님 장례는 한인회 장으로 치뤄졌었다. 그때 내가 놀란 것은 장례식장에 근조화라고 할까, 고인을 기리는 화환이 장례식장 벽에 가득했었다. 화환을 식장 안에 더 이상 놓을 자리가 부족해 들어오는 입구와 복도까지 화환으로 가득했었다. 나는 당시 이렇게 많은 화환이 장례식장에 들어온 것은 처음 보게 된 경험이었다. 

그런데 이번 임직식에 가서도 같은 경험을 했다. 너무 많은 축하 꽃다발이 임직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장로님 장례식에서 많은 화환을 보고 느낀 그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돌아가신 분에게 무슨 화환이 저렇게 많이 필요할까, 그렇게 무수히 많은 화환으로 고인을 기리는 이유가 뭘까, 마찬가지로 임직자에게 그렇게 많은 꽃다발로 축하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뭘까, 과연 그 많은 꽃다발을 받을만한 직분인가…

분명히 고인의 장례를 기리는 화환이나 임직자들이 받는 화환이나 꽃다발 자체에 의미보다 그 꽃다발 속에 감추어진 상징성이 더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보여진다. 

꽃다발, 화환, 근조화의 꽃들은 정말 아름답다. 그 꽃들이 품어내는 향기 또한 분위기를 고조시키기에 적합하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고 향기로는 꽃들은 사실 이미 죽은 꽃들이다. 길게는 며칠전, 짧게는 오늘이나 어제 뿌리에서 꺾어져버린 죽은 꽃들이다. 죽은 꽃들이 마지막 향기를 내고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 아닌가.

어쩌면 장례식장에 꽃들은 고인이 일평생 살아온 인생의 삶을 함축시킨 그분의 인생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렇게 꽃같은 인생을 살다 지금 죽은 꽃이 되어 고인 앞에 놓여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일까 그 많은 화환은 그분의 무덤 안과 밖에서 함께 사라져버린다. 죽음으로 고인도 꽃도 사라지는 것이다.

그런데 임직자들에게 주어지는 꽃다발도 이와 비슷한 의미가 들어 있다. 그 많은 꽃다발은 임직자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표현한 것으로 여겨진다. 임직자들은 그 꽃다발을 받는 순간 꽃다발과 함께 죽은 인생이다. “당신은 지금까지 이 꽃들처럼 산 인생입니다. 이제 이 꽃들이 죽은 꽃인 것같이 당신들은 죽은 것입니다.”그런 의미이다.

이런 ‘무서운’ 꽃다발을 알고 받을까? 

목사임직으로 받는 꽃다발, 장로,권사 임직으로 받는 꽃다발이 진정으로 축하받아야 할 꽃다발일까, 세상적 의미에서 목사라는 직분, 장로라는 직분이 존경과 권위를 갖게 되었다는 세상적 지위를 상징하기에 주는 꽃다발일까, “축하합니다!”뭘 축하한다는 말인가.

내가 받은 이 꽃다발은 지금까지 이 꽃과 같은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 이 꽃과 같이 죽은 인생입니다. 목사로 장로로 권사로 임직을 받았다는 것은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은 죽었습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씨로 말미암아 장로라는 꽃. 목사라는 꽃, 권사라는 꽃을 피워 예수님이란 열매를 맺고 살겠다는 출발이 바로 꽃다발을 받는 순간이 아니겠는가.

특히 목사로 임직받고 꽃다발을 받는다는 것은 나는 이제 이 꽃이 죽은 꽃같이 나 역시 죽었습니다. 그런 의미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가지고 있던 성질은 죽었습니다. 내가 배웠던 학문 죽었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경험 죽었습니다. 그 죽음의 꽃다발을 임직자들이 들고 있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그런 무서운 꽃다발을 들고 축하객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즐거워한다면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향해 축하한다고 고인 앞에 모여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는 것과 너무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너무 비약적인 표현일 수는 있지만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받는 임직은 축하라기보다 엄숙과 비장함이 앞서야 되는 것 아닌가 여겨진다.

임직을 받기 전 꽃피웠던 삶은 이제 끝났다. 이제 피워야 할 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남은 모든 인생 여정이 예수 그리스도로 꽃피워야 한다. 임직을 받았으면 이제 어디를 가든 예수 그리스도의 꽃향기가 나야 한다. 만일 예수님의 향기가 나지 않고 과거 죽은 그 성질과 분노가 발동한다면 목사라는 꽃, 장로, 권사라는 꽃은 피기도 전에 죽어 말라버린 죽은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진다.

임직자는 사람이 세운 직분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충성되이 보사 세우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운 직분은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예수만을 나타내기 위한 직분이라는 사실을 놓치면, “내가 목사인데…, 내가 장로, 권사인데… 감히 목사에게…”이 착각에 빠지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도록 있도다”(벧전1: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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