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July 21, 2024   
함께 성장하고 있는 우리 

03/31/23       이계자

함께 성장하고 있는 우리 


뉴욕으로 삶과 사역의 둥지를 옮겨 올 당시, 우리 가족은 네 명 - 남편과 나(필자, 이후로 ‘나’라고 씀), 큰 아들과 작은 아들 - 이었다. 그러나 몇 년 후, 한 명의 식구가 늘었다. 한국에서 온 친정 조카 W이다. W는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7 년째 우리 가족이 되어 함께 살고 있다. “혹시, 언니가 아들을 조기 유학시키고 싶어서 뉴욕에 있는 동생 집에 보낸 거 아니에요?” 라고 물으실 분이 있겠지만 그건 아니다. 뉴욕 행을 제안했던 사람은 언니가 아닌 나였다. 

W는 나와 세 살 터울인 언니의 무녀독남 즉,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이다. 나보다 많이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어렵게 낳은 아들이었다. 우리 가족이 한국을 떠나 올 때 W는 6살이었고, 그 때는 W에게 그런 문제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 형제와 자매 없이 혼자 자랐고, 아빠와 엄마는 모두 직장을 가지고 있었으며, 평소 친구와 노는 일에 소극적이었기에 그런 성향의 조용한 아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고만 생각했다. 

언니와 통화를 할 때면, 언니는 W에 대한 걱정을 조금씩 비추기 시작했다. 동네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것 보다 집에서 혼자 책을 읽고, TV 나 비디오 시청하는 걸 훨씬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때도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없었고, 왕 따를 당하며 지냈다고 한다. 주일에 교회에 가서도 늘 혼자 주변을 배회했고, 어쩌다 보면 친구들이 아닌 선생님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을 보게 되어 속상하다고 했다. 그래서 언니에게 집 가까이에 심리상담소를 찾아보고 W를 데리고 가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해서 검사도 받았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정확한 증상을 찾아내지는 못했고, 상담도 몇 번 받다가 흐지부지된 것 같았다. 

중학생이 되면서 W의 학교생활은 더욱 힘들어졌다. 아이들의 괴롭힘이 심해지고, 담임선생님은 별 관심을 기울인 것 같지 않았다. 그런 고통을 겪으면서도 순하고 마음 약한 W는 학교는 절대 결석해서는 안 되는 곳으로 알았다. 나는 긴급히 처방을 내려야 했다. 여름방학에 우리(이모네) 집으로 여행을 보내보라고 한 것이었다. W가 JFK 공항에 입국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나는 W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을 한 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부부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한국의 학교제도에서는 W가 사람대접을 받고 살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떤 강력한 힘(?)에 떠밀려서 우리 부부는 W를 다시 뉴욕으로 오게 하였다.  

W와 우리 가족과의 힘겨운 적응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무엇보다도 우리 부부의 1차적인 소임은 W가 가진 문제의 요인(증상)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었다. 그 과정의 이야기를 다 하려면 밤을 새워도 못할 만큼 많다. 우리 부부도 처음 겪게 된 일이라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정보도 통로도 모르는 상황이라 낙심이 되었다. 그 때 미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 터졌다. 버지니아 텍 학생이었던 조승희가 벌인 총기난사사건이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어 각 학교마다 문제학생들에 대한 긴급상담이 지원되면서 얼떨결에 – 우리에겐 우연 같지만, 때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이다 – 상담을 받게 되었고, 평가(evaluation)를 통해 W가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 W에게는 아스퍼거스 신드롬(지금은 자폐스펙트럼에 포함)과 약간의 토렛과 틱 장애(지금은 거의 없음)가 있는 걸로 나타났다. 

무엇보다도 문제의 이유를 알게 되니 눈이 뜨이는 것 같았다. 가족 가운데 장애가 있는 식구가 있으면 가족 모두가 힘들다. 중증 장애가 있다면 더더욱 힘들 것이다. W의 경우에는 발달장애의 정도가 약한 편인데도 우리 가족이 적응하기까지 말할 수 없이 힘들었다. 한 가지를 가르쳐주면 그것이 몸에 배일 때가지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해야 했고, 한 가지 습관을 고쳐주려면 역시 수백 번 수 천 번을 기다려야 했다. 우리 가족만 힘들었을까? 물론, W도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발달장애아들의 공통적인 증상은 사회성이 없어서 친구는 물론, 사람 사귀는 것을 싫어하는 것이고, 감정부분이 발달하지 못해서 자신의 감정에 둔감하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공감)도 어렵다. 아마도 감정이 무뎠기에 부모 곁은 떠나와 있어도 외로움을 덜 느꼈을 것이고, 자기 집과는 많은 면에서 다른 이모 가정에 적응하는 것을 힘들다고 느끼는 정도도 덜 했을 거라 생각되어 도리어 그것이 위안이 되곤 했다. 

17년이라는 세월이 짧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W는 정말 많이 발전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어느 덧 6년이 되어가고, 좀 늦었지만 작년 가을에 뉴욕 시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일을 다 기록한다면 아마 책 한 권으로는 모자랄 것이다. W가 어린 나이에 부모 곁을 떠나 뉴욕의 이모 집에 오게 된 것도, 이모 가족과 함께 지내 온 17년 간의 힘들고 어려웠던 모든 과정들 중에도, 29세의 청년이 되어 매일 이른 시간 맨하탄으로 출근하는 직장인이 된 것도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시다. 앞으로의 일도 어떻게 인도해 가실지 우리는 모르지만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이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이 모든 일로 인해 우리의 믿음은 더 굳건해 졌다. 사막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체험했기 때문이다. 17년 동안 W만 성장한 것이 아니다. 우리도 함께 성장했다. 지금도 우리는 성장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성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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