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리던 해, 나는 서울올림픽공식기록영화 총괄담당관으로 일을 했다. 역사에 남길 영화제작이 당시 내 삶에 목표였다. 이 기록영화를 만들기 위해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영화 관련 대학 교수들, 국립영화 제작소, 영화진흥공사, KBS 다큐멘터리 제작팀, 대한민국에 영화에 전문가들, 그리고 해외에 올림픽기록영화 전문 감독들 모두를 총동원시켜 공식기록영화 제작 전문위원회를 구성하는 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당시 영화제작에 최고 권위자라고 하는 임권택 감독을 총감독으로 약 600페이지의 계획서를 만들어 추진하면서 올림픽을 치룰 23개 경기장을 답사 하였고, 해외에 나가 서울올림픽을 준비하는 각국에 올림픽 메달 유망주들을 찾아가 그들의 훈련 모습도 촬영하였다.
올림픽이 열리기 한달전, 그리스로 향하여 성화봉송을 채화하는 과정과 성화를 들고 그리스 전역을 도는 과정도 촬영을 했다. 성화 봉송을 가지고 제주도에 도착한 이후 성화릴레이는 전국 각 도, 군, 시를 돌면서 서울로 올라왔다, 그 많은 과정을 100여명의 촬영 팀들이 뒤따라 다니면서 일일이 촬영을 했다.
올림픽이 열리던 날, 400여대의 촬영기가 전국 각 지역으로 나누어져 각 경기종목을 촬영했고, 경기뿐만 아니라 공항으로 입국하는 관람객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인터뷰도 하였을 뿐 아니라 각종 문화행사가 전국 시도에서 열리면서 문화 행사 촬영도 놓치지 않고 해 놓았다. 올림픽공원에서는 세계 123개국 작품들이 전시되었고 세계 각국 VIP들이 묵고 있는 호텔 및 기자 회견장에도 빠짐없이 촬영을 해 놓았다.
서울올림픽 공식기록영화는 이런 엄청난 과정을 겪으면서 탄생된 작품이다. ‘이제 벽을 넘어서’라는 서울올림픽 공식기록영화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후대에 남길 역사적 보존물로 지금도 남아있다.
나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고용되었고 그것을 만들어내는 일이 내 사명이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완수해 놓았다는 자부심도 매우 크다. 하지만 목적은 다 이루었는데 그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얻어진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처음 경험해 보는 각종 일들, 처음 가본 나라, 각 나라의 다양한 문화 등 많은 과정에서 얻게 된 경험들이 목적을 이룬 결과보다 더 나에게는 큰 영향력을 가져왔다.
나는 여기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했다.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 인가에 대한 목표는 사실 불투명했다. 그런데 하나씩 하나씩 가는 과정 속에서 조금씩 윤곽이 들어나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아지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 목표는 왜 있는가, 목표가 있어야 과정이라는 것이 보이기 시작한다. 목표가 없으면 과정도 없다. 이 과정이 어쩌면 목표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목회를 30년 가까이 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라는 목표를 행해 달려왔는데 아직도 목표가 묘연 하기만하다. 어디까지 가야 목회의 목표에 도달한 것일까, 교회를 건축해 놓는 일이 목회의 목표일까, 수천명의 성도를 가진 교회로 성장시키는것이 목표일까, 은퇴나이가 되어 은퇴한 목사님들이 과연 목표를 완수했기에 은퇴하게 된 것일까.
목회나 인생이나 비슷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목회 라는 것, 인생이라는 것은 정해진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참 많은 착오를 했을 뿐이다, 그 많은 착오를 되돌려보니 그 착오가 바로 목적을 향해가는 과정 이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뜻이다.
과정은 그 자체가 목적을 향해가는 연장선상에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산 정상에 오른다고 산에 오르는 것만이 아니라 지금 목표를 향해 오르고 있는 이 산도 산이다. 정상에 올라 밟은 정상도 산이지만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산도 산이다. 온통 내가 밟고 있는 이 한걸음 한걸음 가고 있는 이 과정이 목표이고 정상이 아니겠는가.
어쩌면 지금 겪고 있는 모든 어려움 자체가 인생이고, 목회이기에 지금 이 순간이 내 삶에 과정이고, 기쁨이고, 감사의 조건 아니겠는가. 그런 이유에서 결과는 과정의 끝일뿐 모든 것이 과정에서 결정된다는 사실로 보아 과정 속에 즐거움이나 괴로움 없이는 어떤 결과도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 진리가 이제야 눈에 보이니 참 늦게 깨닫는 존재인가 보다.
여행을 하는 여행자들의 기쁨은 목적지로 가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많은 것들이 더 즐겁고 기쁨이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 만이 여행의 기쁨은 아니라 본다. 어쩌면 설정된 목표를 향해 가다보면 그 목표보다 전혀 다른 더 큰 축복이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 인생사 아니겠는가.
20대 헤어진 사랑하는 연인이 보고 싶다는 것은 전부 과정이다. 50-60년이 지나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그 연인을 꼭 만나야겠다는 목표는 그 목표 때문에 50여 년을 마음속에 그리움과 설렘으로 지낸 자체가 행복이고 기쁨이지 만남의 목표가 완성되어 만나본들 아마 실망과 어색함만 공존 하리라 여겨진다.
목회나 인생은 결과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과정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이 깊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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