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장모님은 유튜브로 한국어 코미디 프로를 보고 계신다. 같은 프로가 되풀이 되어 계속 나오는데 장모님은 오전에 몽땅 본 것을 오후에 또 다시 본다. 같은 내용의 프로를 보고 또 보고 계속 보는 것이 하루 일과다.
치매가 있어 방금 본 내용도 잊고 또 본 그것을 또다시 보는데도 새로운 것을 보는 것같이 웃고 즐기면서 본다. 가끔씩 혼자 대화까지 하면서 열심히 본다. 벌써 일년이 넘도록 같은 내용을 보고 계시니 아마 수백 번을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볼 때마다 재미있어 한다.
장모님 머리에 있는 기억 세포가 사라진 것이다. 그래서 방금 보고도 뭘 보았는지 기억을 못한다. 방금 말해 놓고도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선교 여행을 다녀와서 “잘 다녀왔습니다” 인사를 하였더니 “누구시죠?”알아보지 못한다. 같이 지내다 보니 목사님 이라는 것만 안다.
그런데 가끔 뜬구름 잡는 말을 하는데 그 기억은 정확하다. 아들 집에 있을 때 섭섭했던 과거는 정확하게 기억하고 계신다. 또 하나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40년 넘게 같이 살았던 남편을 기억한다. 어렴풋이 자신을 사랑했던 남편에 대한 기억이 가끔씩 기억이 나는 모양이다. 그 사람이 남편 이라기보다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감정만 살아서 그런 사람이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남편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아직 자신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나는 지나간 시간을 잊고 사는 장모님을 보면서 그래도 인생의 삶을 지탱해 주는 것은 남아 있는 기억들이 아닌가 보여진다. 나도 그렇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섭섭했던 감정, 가슴 아팠던 감정, 그리고 즐겁고 행복했던 모든 것들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에게 남아 있는 기억들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의식이 느껴지는 듯하다.
나는 초등학교 시절의 기억이 별로 없다. 하기야 60년이 지난 지금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계실까… 많은 분들이 어렴풋이 스쳐 갔던 추억들로 기억에 남아 있으리라 본다. 나 역시 스쳐지나가는 추억들 뿐이다. 하지만 단 하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이 있다. 몇 학년 때인지도 기억에는 없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서울 4대문 안에 사는 것을 고집하셨던 분이 사업이 부도가 나면서 당시 공동묘지로 유명했던 미아리라는 곳으로 이사를 가야만 했었다. 어린 나는 미아리에서 종로에 있는 당시 교동국민학교를 버스를 타고 다녀야만 했다. 늘 만원 버스에 시달려야 했던 내 기억에 아주 추웠던 어느날, 버스가 고장이 나서 모두 내려야만 했고 다음버스를 타야만 했는데 그게 어린 나로써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몇 대의 만원버스를 보내고 학교에 아주 늦게 도착했었다.
지각을 하면 선생님에게 호된 꾸지람을 받았던 당시 잔뜩 겁을 먹고 이미 수업 중인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선생님의 눈과 마주쳤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보고 “추웠지!”그리고 난로가로 나를 이끌고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그 선생님의 한마디, “추웠지!”나는 그때 상황은 기억에 없다. 왜 선생님이 지각한 나를 따뜻하게 대해 주셨는지도 모른다. 그저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 따뜻한 한마디가 6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다.
또 하나의 기억이 있다. 그때도 초등학교 시절이다. 학교에서 집으로 온 나는 문 앞에서 큰아버지를 만났다. 당시 큰아버지는 무척 화가 난 표정이었다는 것이 기억난다. 내가 뭘 어떻게 했는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에 없지만 큰아버지가 나를 향해 “이런 못된 놈의 자식들 같으니”그 말이 기억에 남아 있다. 지금도 왜 나에게 그런 화풀이를 했는지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도 내 가슴에 남아 있다.
솔직히 우리들의 지나간 과거에 남아 있는 것들이 어찌 그런 것 들뿐이겠는가, 좋은 일 나쁜 일, 생각하고 싶지 않은 아픈 상처, 마음 뿌듯하게 했던 감격스럽고 행복한 순간 등등 수많은 추억들이 우리 삶의 추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은가…
그런데 그런 추억들이 예기치 않은 사건, 사고에서 받은 상처보다 그 사건사고에서 발생한 사람들과의 언쟁, 사람들과의 관계, 그리고 주고받았던 말들을 함축시켜 보면 나의 감정을 따뜻하게 했던 그 사람들과의 좋은 추억, 그리고 나의 감정을 아프게 했던 그 사람들과의 나쁜 추억으로만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목사들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의 감정을 좋게 만들어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기보다 악담을하고 거짓으로 사람을 매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들을 서슴지 않고 하는 목사들로 인해 내 인생의 기억에 나쁜 감정만 쌓여져 가는 것같아 가슴이 아프다.
먼 훗날, 내 머리 속에 기억들이 희미해져 갈 때, 사라지지 않는 사랑의 따듯한 한마디를 해준 그분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하는 바람인데, 혹시나 악담을 했던 그 목사가 네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지나 않을까 오늘도 몸부림치면서 내 기억에서 지워지기를 기도하고 또 용서해 본다.
어차피 지나간 것들 그냥 추억일 뿐이다. 과거에 추억을 가지고 미래의 행복과 불행이 좌우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소박한 바람, 그래도 나쁜 기억보다는 좋은 기억들이 추억으로 남아 있는 것이 더 흐뭇한 여생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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