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열 다섯 살에 예수님을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필자는 예순을 넘어 선 이 나이가 되기까지 주어진 여러 역할을 감당 하면서 무사히(?) 살아왔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다. 오랜 세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듯한 신앙인으로 보였지만 – 스스로도 그렇게 착각하며 – 40대 초반, 인생의 광야학교에 입학 하면서부터 비로소 내가 얼마나 작은 믿음을 가졌는지, 얼마나 율법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왔는지, 상처투성이인 내면을 얼마나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살아왔는지를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구원의 감격이 뜨겁지 않았고, 베풀어주신 풍성한 은혜를 맘껏 누리면서 살지 못하고 부스러기 은혜에 머물며 근근이 살아왔다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부스러기 은혜요? 그게 어때서요? 부스러기 은혜만 있어도 감사한 거 아니에요?”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까(고전1:25) 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은혜라면 부스러기 정도의 적은 은혜라 할지라도 큰 힘과 위안이 되기 때문일 것이다.
‘부스러기’라는 말을 들으면 혹시 금방 떠오르는 성경 이야기와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있지 않은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달려와서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렸던 수로보니게 여인이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그녀의 간청에 예수님께서는 매정하게 대답하셨다. “자녀의 떡을 위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라고 하며 물러서지 않았던 그녀는 귀신 들려 고통 당하고 있던 딸이 나음을 입는 큰 은혜를 받았다(막7:24-30, 마15:21-28)..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풍성한 은혜였던 것이다.
예수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받아 누리는 은혜의 크기는 모두에게 동일하지 않다. 어떤 자녀들은 아버지가 마련해 놓으신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며 살아가지만, 어떤 자녀들은 겨우 부스러기 은혜만 누리며 살아간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 나를 위해 어떤 풍성한 은혜를 마련해 놓으셨는지, 그것을 맘껏 누리며 사는 방법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그럴 수 밖에 없다. 육신의 아버지에 대한 이미지가 건강하지 못하면,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이해와 치유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면, 하나님께서 때마다 일마다 형편에 맞게 예비해 두신 풍성한 은혜를 발견하기가 어렵다.
“주를 두려워하는 자를 위하여 쌓아두신 은혜 곧 주께 피하는 자를 위하여 인생 앞에 베푸신은혜가 어찌 그리 큰지요(시31:19).”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9:8).”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눅15:22-24).”
예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이유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 되어 십자가 위에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이유는 죄인이었던 우리로 하여금 새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시기 위함이다(요10:10). 그러므로 우리들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이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은 자녀이기에 가능한, 자녀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특권인 것이다.
이 세상에 만사 형통한 인생은 없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해서, 믿음의 깊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해서 인생의 모든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땅에 발을 딛고 사는 동안에는 여전히 어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일들이 찾아온다. 문제는 그 어려움과 불편과 고통 속에서 아버지의 깊은 뜻을 이해할 수 있다면 그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감사할 수 있으며,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풍성히 누리며 살 수 있다.
예수님의 병 고쳐주심의 소문을 듣고 달려와 예수님을 향하여 소리쳤던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의 싸늘한 응답에 굴하지 않고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구했던 그 여인, 그녀는 부스러기 은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풍성한 은혜를 받았다. 엄청난 칭찬과 함께…. 그녀가 그런 믿음을 고백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고 있었고,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것과 믿는 것을 입으로 고백하고 행동으로 옮긴 것이다. 그녀는 그렇게 할 수 있었는데 왜 우리는 안 되는 걸까? 각 사람 안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올 해는 그 이유들을 찾아보자. 그리고 묵은 땅을 기경하듯 마음 밭을 갈아엎어보자.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주셨는데도 굳이 부스러기 은혜로 근근이 살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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