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안방에는 커다란 의자 하나가 자리잡고 있다. 일명 ‘수유 의자(Nursing Chair)’라고 불리는 것이다. “아니, 60이 넘은 나이에 왠 수유 의자?” 궁금한 분들이 있을 것이다. 이 수유 의자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큰 며느리이다. 30개월 된 손녀가 태어나면서부터 6개월이 될 때까지 모유를 먹일 때 사용했던 의자인데 이유식을 먹게 되면서부터 더 이상 쓸모가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둘째를 가질 계획이 있어서 처분할 생각은 없는데 자기 집에 놓아 둘 곳이 마땅치 않으니 한동안 보관해 달라고 큰 아들 내외가 맡긴 것이다.
처음 부탁을 받았을 땐 잠깐 고민이 되었다. 우리 집에도 공간의 여유가 없어서였다. 하는 수 없이 안방에 들여다 놓게 되었다. 그런데 왠걸, 이 녀석이 자리 값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어느 새 나에게 ‘효자’가 되어 기쁨을 주고 있다. 이젠 되려 남편에게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보, 아이들이 이 의자 도로 찾아간다고 하면 어쩌죠? 너무 아쉬울 거 같아요.”
아들 집에서는 수유 의자였지만, 우리 집으로 옮겨 온 후에는 ‘기도 의자(Prayer chair)’로 그 기능이 바뀌었다. 버튼을 누르면 등받이는 물론, 발판까지 조절이 되어 60대 초반인 내가 이른 새벽이나 일과 중에 시간을 내서 비스듬히 기대어 묵상하고 기도하기에 안성맞춤이다. 피곤한 날엔 묵상을 하다가 어느 새 스르르 잠이 들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은혜의 깊은 자리로 빠져들어 진지하게 하나님과의 소통을 이어가는 신령한 의자(?)가 되기도 한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의자인가!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에 기도의 자리는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기도의 자리는 ‘하나님과 나와의 친밀하고도 깊은 만남’을 갖게 해 주는 은혜롭고 거룩한 자리이다. 하지만 “기도는 노동이다” 라는 말처럼 기도하는 일은 쉽지 않다. 기도는 훈련이 필요한 일이다. 종교개혁자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기도는 하나님의 은택을 매일 받을 수 있는 믿음의 으뜸가는 실천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의 제일되는 특권이며, 영속적 훈련이라고 했다.
예배당이나 교회 기도실, 수련회 때 찾아가는 기도원 만이 기도의 자리는 아니다. 어디든 기도의 자리가 될 수 있다. 가정에도 기도의 자리를 구별해서 마련해 놓으면 좋다. 매일, 또한 수시로 하나님과 만나는 기도의 시간을 구별하고 그 일에 우선순위(Priority)를 두는 것은 자녀들만의 특권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도를 통하여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서)의 삶을 살아갈 지혜와 능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기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구약에서는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기드온, 한나, 다윗, 솔로몬, 엘리야, 엘리사, 히스기야, 여호사밧, 욥, 요나, 에스더, 느헤미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의 기도 이야기를 만날 수 있고, 신약에서는 세례 요한, 예수님, 수로보니게 여인, 중풍병자와 네 친구, 혈루병 앓던 여인, 바디매오, 삭개오, 누가복음 18장에 나오는 과부, 세리, 수가 성 여인, 왕의 신하, 마르다, 바울, 야고보 등의 간절한 기도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그들의 기도는 간절했고 그 기도들은 모두 응답되었다.
특히 어린 자녀가 있는 가정이라면, 기도의 자리는 신앙교육의 차원에서 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일상의 한 부분(하루의 시작)으로, 감사한 일이 있을 때나,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아플 때나, 간절히 바라는 것이 있을 때 부모가 기도의 자리를 찾는 것을 본 자녀는 자연스레 그런 모습을 본받게 된다. 자녀 역시 기쁠 때나 힘들 때, 아플 때나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기도의 자리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기도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머리 속을 맴도는 찬송이 있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새 찬송가 364장)’이다. 예수를 믿기 시작한 고등학생 시절부터 오랜 세월 불러 온 찬송인데 인생의 광야학교를 통과하고 난 후에는 가사의 구절 구절이 내 마음을 더욱 울컥하게 만든다. 오늘은 1절과 4절의 가사를 읊조려 본다.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이 세상 근심 걱정에 얽매인 나를 부르사
내 진정 소원 주 앞에 낱낱이 바로 아뢰어
큰 불행 당해 슬플 때 나 위로 받게 하시네(1절)
내 기도하는 그 시간 그 때가 가장 즐겁다
주 세상에서 일찍이 저 요란한 곳 피하여
빈 들에서나 산에서 온 밤을 새워 지내사
주 예수 친히 기도로 큰 본을 보여 주셨네(4절)
2023년 새 해가 밝았다. 무익한 종인 우리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일년이라는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셨다. 새 해에는 말씀 묵상과 기도 시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기도 의자’가 우리 집에 머물 동안에는 물론, 주인의 집으로 다시 돌아간 이후에도 변함없이 ‘기도의 자리’를 잘 지켜야겠다.
페이팔로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