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씨 안이 궁금해/ 쪼개 보기엔/ 너무 작고 딱딱해~꽃씨 안이 궁금해/ 귀에 대고 들어 보지만/ 숨소리도 없어~ 꽃씨 안이 궁금해/ 코에 대고 맡아 보지만/ 냄새도 없어~ 궁금해도 기다려야지/ 꽃씨만 아니야/ 기다려야 할 건 참고 기다려야지” 유경환 아동문학가의 시 ‘기다려야지’이다. 그래 기다릴 건 기다려야지. 참고 기다려야지.
한 평생 세상을 살다 보면 기다려야 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이 생긴다. 기다림(waiting) 혹은 기다린다(wait)는 것은 참음을 전제로 한다. 사람을 기다리든 무엇을 기다리든 시간을 앞질러 갈 수 없는 물리적인 제약이 있는 한 기다려야 된다. 약속시간에 당도했는데 사람이 없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라면 기다려야지 별 수가 없다.
기다림 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고 돌아 올 때를 기다리는 마음이다.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이 고구려로부터 돌아와 처자와 만나볼 겨를도 없이 일본에 볼모되어 있는 왕자 미사흔을 구하려 떠나게 됐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아내가 부랴부랴 율포(지금의 울산)에 이르렀으나 남편 박제상은 이미 배 안에 있었다.
아내는 남편을 부르며 크게 울었으나 제상은 손만 흔들며 떠나가 버렸다. 아내는 슬픔을 못 이기어 매일같이 치술령에 올라 일본 쪽을 향하여 남편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남편은 돌아오지 않고 그녀는 기다리다 지쳐 마침내 산 채로 돌이 된다. 이게 곧 치술령의 망부석이라 불린다. 화가 이중섭이 사랑하는 아내를 일본으로 떠나보낸 후 기다리는 마음과 오버랩 된다.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그리움, 즉 보고 싶은 마음이 없으면 기다리는 마음도 없게 된다. 기다림은 궁금함이다. 떠나 보낸 님이 어떻게 지내는지 생각되는 궁금함은 기다림이 되어 이별한 님에게 마음으로 전해진다. 기다림은 희망이어야 한다. 그러나 박제상의 아내같이 희망이 사라진 기다림은 슬픔으로 변하여 망부석이 되게도 한다.
살고 있는 동네에 프로즌 요구르트 가게가 하나 있었다. 요구르트를 얼음처럼 차게 만들어 판다. 가게의 주인은 중년이 채 안돼 보이는 동양 여인이었다. 그런데 안타까운 건, 한 겨울에도 프로즌 요구르트를 판다. 가게 오픈한지가 몇 년 됐는데도 변함이 없다. 겨울에는 메뉴를 바꾸어 따뜻한 음식을 팔면 좋을 텐테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요즘처럼 더운 여름이라면 잘 팔릴텐데, 추운 겨울엔 손님이 있을 리가 있나. 한 겨울, 그 가게를 오가다 지나칠 때엔 그 여인은 홀로 서서 손님을 기다린다. 가게는 아주 께끗하게 정돈되어 있어,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적적하게 만든다. 그래도 그 여인은 손님을 기다린다. 기다리는 그 여인의 마음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결국 그 가게는 그 겨울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손님이 한 명도 들어오지 않는 가게에 홀로 서서 손님 오기를 기다리는 그 여인의 인내심, 흉내도 못낼 것 같다. 사무엘 베게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끝없이 기다리는, 기다림의 행위 예술을 본다. 허무주의를 극복해 보려는 베게트의 이 작품은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가져다 주었으나 작품 자체는 주인공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고도를 기다리다 지루하게 끝난다.
고도(Godo)는 God에 o자를 하나 더 붙인 이름이다. 작가가 전제하고 있는 고도를 기다림은 신(神)이나 구세주가 올 수 있는 가능성에 모든 희망을 걸고, 실의에 차 있는 인간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이 기다리는 고도는 메시아일 수도 있고 또 다른 구원자일 수도 있다.
삶은 죽음을 기다리고 죽음은 삶이 다 함을 기다린다. 아침은 저녁을 기다리고 오늘은 내일을 기다린다. 꽃씨를 열면 꽃은 피지 않는다. 기다림은 그리움이다. 박제상의 아내, 치술령의 망부석은 그리움의 절정이다. 또 다른, 메시아, 고도(Godo)를 기다리는 인생들이 우리들이 아닐까. 참고 기다리며 사는 게 우리네 인생들이 아닌가 싶다.
유대인은 아직도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다. 유대인들에겐 예수는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기에 그렇다. 기독인들은 예수의 재림을 기다린다. 기독인들에게 메시아인 예수는 2,000여년 전 부활 승천했고 성경은 1,500회 이상 예수 재림을 말하고 있기에 기독인들은 예수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거다. 예수를 기다림은 기독인들의 가장 큰 소망 중 하나다.
집을 나간 탕자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 죄악 속에서 헤엄치고 있는 지금의 인류가 다시 죄를 벗어 던지고 주님께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이지 싶다.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지옥에 빠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위해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거룩한 기다림에 동참하여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참 신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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