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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를 끄는 것은 말? 마부?

08/21/22       노승환 목사

수레를 끄는 것은 말? 마부?


‘네가 사랑하려 하지 말고 사랑이 너를 움직이게 하라!’

기독교의 사랑 실천론은 위의 말로 정리될 수 있겠습니다.

 

글을 참 잘 쓰시는 이현주 목사님은 위의 말을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수레를 끄는 것이 말이냐? 마부냐?

“내가 누구를 사랑한다”라는 것은 “말이 수레를 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고, “사랑이 나를 움직인다”라고 하는 것은 “마부가 말을 몰아 수레를 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어떻게 보면 그 말이 그 말 같습니다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말은 물론 수레를 끌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늘 올바른 곳으로 향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마부 없이 말이 자기가 알아서 수레를 끈다면 분명 멀리 가지 못해 수레를 논두렁에 처박고야 말 것입니다.

수레는 말이 끌면 안 되는 것입니다.

수레는 마부가 말을 몰아 끌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러하고 우리 기독교 신앙의 가장 초절정인 ‘사랑함’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내가 사랑하려고 하는 것과 내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말이 수레를 끄는 격입니다. 힘껏, 열심히 해 수레를 끌 수는 있지만 그럴수록 더 큰 사고만 낼 뿐입니다.

마부인 예수께 말인 저를 온전히 맡김으로 수레인 제 인생을 끌고 가는 것 그것이 옳은 것입니다. 마부가 가자는 대로 가고, 이끄시는 대로 움직여지는 그런 말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 내 의지는 없는 100% 수동태냐? 

그것이 채찍질이나 억지 강요에 의해서라면 그렇습니다. 제가 기계로 만든 로봇 말이면 그럴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 마부를 너무도 사랑하는 말이기에 스스로 자원해서 기꺼이 그러는 것이니 100% 능동태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니 결론은 내가 마부가 되신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그분을 신뢰하고 의지하느냐는 것이 되네요. 

내가 사람들을 사랑해보려고 노력도 하고, 사랑해주고 아껴주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내가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면 실망하고 상처받았던 모든 모습이 기억납니다. 말이 수레를 끌었더니 남는 것은 상처뿐이지요. 싣고 가던 보물도 다 땅에 쏟고 말았고요.

 

자 이제 선한 마부께서 다시 또 길을 떠나자 하십니다. 

수레에 보물도 다시 가득 실어 주셨습니다. 

 

“이럈!”

“히이이잉!”

 

번역하니,

“자, 가자, 승환아!” 

“네, 주님 말씀만 하옵소서. 종이 듣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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