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 January 28, 2023    전자신문보기
진정 죽음을 아는 자

07/10/22       김명욱목사

진정 죽음을 아는 자


죽음이란 명제(命題)는 인간사에서 가장 논의하기 힘든 것 중의 하나다. 다른 동물들은 죽으면 그것으로 끝난다(일부 고등종교를 빼고). 인간은 아니다. 태어나는 것이야 자기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수동적인 태어남이다. 그러나 죽음은 아니다.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오는 한 사람의 마지막은 세계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을 때도 있다.

 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졌더라도 죽음 앞에선 강해질 수가 없다. 죽음이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라 하기도 하지만 죽음을 눈 앞에 둔 사람의 심정을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당해보지 않고서는 알길이 없을 것 같다. 앞으로 일주일 후에 자신이 세상을 하직할 수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이라면 그 사람은 도대체 어떤 마음일까.

 2014년 11월1일 29세의 신혼녀 브리트니 메이나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뇌종양을 앓고 있던 그는 고통보다 죽음을 선택했다. 존엄사(尊嚴死·death with dignity)다. 존엄사 인정 확대를 주장하는 ‘연민과 선택’의 대변인은 “메이나드가 의사가 처방해준 약물을 복용하고 침대 위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의 품에 안겨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밝혔다.

 2012년에 결혼한 그는 뇌종양 말기 진단을 받고 6개월 시한부 인생이 되었다. 그는 발작과 심각한 통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한 달여간의 조사 끝에 자신과 가족의 가슴을 찢어지게 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는 자신을 살릴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자신에게 남아있는 시간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지 않다며 존엄사를 택했다.

메이나드의 동영상을 보니 그는 자신이 고통 속에서 죽는 것보다는 ‘평화롭게 가길 바란다’(pass peacefully)고 했다. 평화로운 죽음. 약을 먹으며 조용히 세상을 하직하는 그 길. 점점 의식이 희박해지는 그 길은, 본인이야 그렇겠지만 그를 지켜보는 가족들까지 평화스런 마음으로 그를 보냈을까. 아마도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 가족들에게 함께 했으리라.

존엄사와 안락사(安樂死·euthanasia)는 다르다. 안락사는 의료진이 환자와 가족의 동의 아래 약물을 주입해 환자의 생을 마감하게 한다. 존엄사는 의료진의 진료를 받은 환자가 의사가 처방해 준 약물을 스스로 먹거나 주입하여 죽음을 택한다. 메이나드의 경우엔 자신이 직접 의사의 처방약을 복용하여 스스로 세상을 떠난 케이스다.

 수십년 전 신학교에서 존 캅(John B. Cobb, Jr.)교수의 과목을 듣던 중에 ‘죽을 권리’(Right to Die)에 관한 강의를 들은 것이 생각난다. 기독교적 교리로 볼 때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타의에 의해 목숨이 끊어지는 것은 존엄사든 안락사든 살인에 해당된다. 하지만 사회법은 존엄사를 살인으로 인정하거나 혹은 인정 안하기도 한다.

 미국엔 죽을 권리로 존엄사를 인정하는 주가 있다. 오리건, 버몬트, 몬타나, 워싱턴, 뉴멕시코 등이다. 메이나드는 죽을 권리를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는 캘리포니아에 살았다. 그러나 그는 죽기 위해 가족들이 오리건에 이사까지 하여 법적인 권리 보호 속에서 죽을 권리를 자연스럽게 실행에 옮겼다. 살아야 할 권리와 죽어야 할 권리. 무엇이 다를까.

 1942년 1월8일에 태어나 2018년 3월14일에 타계한 스티븐 호킹(Stephen W. Hawking), 그는 살아야 할 권리를 가장 잘 알려준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21세 때에 루게릭(근위축성측색경화증)병에 걸렸다. 그래서 온 몸이 굳어버려 식물인간과도 같았다. 시한부 인생이었던 그가 76년을 살면서 남겨준 ‘우주론’ ‘양자중력의 법칙’과 그의 저서 <시간의 역사>는 세계를 놀라게 한다.

 그는 살아있을 동안 2009년, 미국대통령이 주는 자유의 훈장까지 받았다. 산자는 살 때까지 살아야 한다. 인간의 살아야 할 권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부여한 생명에 대한 의무다. 그러나 죽음보다 강한 고통이 엄습할 때엔 자신도 모르게 죽음을 향하여 어서 오라고 울부짖게 된다. 인간의 허약한 양면성이 여기에 있다.

 생(生)은 언젠가는 한 번 죽는다. 두 번 죽지는 않는다. 정한 날짜에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죽음의 세계로 가버린 메이나드. 당신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나? 그 상황, 소름 끼치는 장면이다. 어쩌면 숨결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스티븐 호킹처럼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하늘의 뜻이 아닐까. 이렇듯 죽음이란 난제(難題)중의 하나다.

 기독교에서의 죽음은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 불교에서의 죽음은 해탈하거나 해탈하지 못하면 윤회(輪回)로 가는 길이 된다. 성경은 말씀하신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한복음17장3절)이라고.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 진정 죽음을 아는 자일 것 같다.

  

페이팔로 후원하기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70-04 Northern Blvd. #2Fl.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