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에 누구를 만나는 가는 아주 중요합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에 사람이 완전히 바뀌어 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베냐민 지파요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라고, 가말리엘 문하생이요, 당대 로마 시민권자요, 산헤드린 공회원으로 위풍이 당당하여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는 권력으로 예수믿는 사람들을 잡아 가두거나 죽이는 일에 가담한 도도한 사람 이었습니다. 그가 사람을 보는 기준은 족보, 학벌, 명예, 권세였지만 예수님을 알고난 후 다음과 같은 고백을 합니다.
"이제부터는 우리가 그 어떤 사람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지 않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았으나 앞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존재입니다 옛 사람은 없어지고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6-17:Korean Living Bible)
연세대학교 캠퍼스 4년동안 다녔던 시절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 이란 문구의 현수막과 채플 시간에 귀 따갑게 듣고 들었지만 무심코 당연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신과대학 조직신학 시간에 Paul Tillich의 New being <새로운 존재>를 읽으며 철학적 신학용어로 이해했습니다. 바울이 새롭게 된 존재는 철학적, 문화적, 신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체험적인 신비의 신앙고백 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안목을 가진 후에는
삶의 목적과 사명이 분명해 집니다.”
지금의 나를 돌이켜 보면서 진정 나는 자신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오늘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을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고있지 않는가.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을 어떤 기준으로 대하고 있는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새사람이 되어 새로운 안목을 가진 후에는 삶의 목적과 사명이 분명해 집니다. 복음증거와 사명감당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칩니다. 자기가 하는 일을 살피며 자랑하지 않고 겸손해 집니다.
개신교수도원에는 감리교, 장로교, 구세군, 순복음, C&MA, ECO 등 여러 교파 목회자들과 여러 연령차 그리고 남녀 목회자들이 매월 한번씩 수십명이 모입니다. 신학적으로 크게 나누면 캘비니즘과 알미니안이즘, 연령적으로는 30대에서 90대까지를 아우릅니다. 목회연륜이나 미국 거주 연한이 제각각 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비교해서 우열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학과 논리를 따지다 보면 나보다 더 나은 사람과 부딪쳐 상처를 받게 되거나 만족을 얻을수 없습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찾아 비난하고 불평하면 우울해지고 모임이 깨어지고 재미 없습니다. 사람을 비난하고 미워하면 원망과 비평이 생기고 예수믿는 사람들끼리 갈라지고 싸우게 됩니다. 이것은 마귀가 손뼉치고 좋아하는 일입니다. 친구관계에서도 가족들 안에서도 교회 안에서도 절대로 비교하지 마시고 있는 그대로 상대방을 이해하며 받아 주십시요. 이단이 아닌 경우에 말입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또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다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각각 맡기고 여행을 떠났다.”(마25:15, KLB) 주인은 각자에게 다른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재능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고 받은 달란트로 어떻게 사명을 감당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수도원의 렉시오 디비나 클라스에는 열세분이 해박한 지식으로 예리하게 첨예하게 토론할 때가 더러 있는데 그때마다 성경이 가르쳐 주시는 말씀으로 돌아가며 ‘예수님이라면’ 여운을 남기면서 겸손히 서로 배우고 은혜 받습니다. 교회와 교파간에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점 (Something different)을 찾아 차이점을 이해할 때 서로 발전하여 진리의 가르침에 다가가는 친밀한 수도원 공동체를 이어갑니다. 주님이 서로 다르게 주신 은사를 깨닫게 되고 감당하게 됩니다.
봄이 냇가 언저리에 초록빛으로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지난 메마른 풀잎은 다 지나가고 새로운 계절입니다. 이민자와 이민교회는 새로워진 존재 입니다. 바울이 예수님 만나기 전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는 안목은 지나갔고 이젠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의 안목으로 세상과 사람을 볼줄아는 새 시대가 왔습니다. 정말 우리가 세속적 가치관을 가지고 교회로 들어와 교회를 더럽히거나 타락시키지 맙시다. 무엇보다 형제를 사랑하며 겸손히 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다하는 형제자매들이 .됩시다.
“큰 집에는 금그릇과 은그릇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무그릇과 질그릇도 있어서 그 중에 어떤 것은 귀하게 쓰이고 어떤 것은 천하게도 쓰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그는 주인이 온갖 좋은 일에 요긴하게 쓸 수 있는 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될 것입니다.”(딤후2: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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