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5년 전의 일이다. 이사를 한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전에 없던 증상이 내 몸에 생겼다. 툭하면 숨이 짧아지는 천식이었다. 알러지과 닥터를 찾아가 검사를 받았더니 먼지와 곰팡이에 반응하는 알러지란다. 무척 낡은 집이었기에 먼지와 곰팡이가 많기도 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내 몸의 면역체계가 무너진 데 있었다.
그 시절, 나는 인생의 미디안 광야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5년 째 투석을 하고 있던(이후 5년이 더 걸렸다)남편과 함께 몇 가정 안 되는 개척교회를 섬기고 있어서 마음도 몸도 지쳐있었다. 투병 중인 남편으로 인해 늘 긴장상태였고, 배우자, 부모, 자녀 등 가족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성도들을 돌아보는 일이 쉽지 않았으며, 이제 막 대학생이 되어 타주로 떠난 큰 아들, 고등학생인 작은 아들, 발달장애를 가지고 있는 친정 조카(고등학생)의 학부모 역할을 하느라 분주했다. 마음이 힘들수록 할 일을 더 만들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이 나의 큰 문제였다. 병들어 가는 몸과 마음은 나에게 끊임없이 신호를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 신호를 알아 차리지 못했다. 내가 이렇게 힘든 것은 내 믿음이 약하고, 기도가 부족하고, 체질이 약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교회 지체들이 겪고 있는 문제들에는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타까워 했지만 정작 내 마음이 병들어가고 있다는 것에는 민감하지 못했다. 내 안에서 울고 있는 어린 나를 이해해 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책임)을 감당해 내느라 안간힘을 쓰며 하루하루를 살아냈지만 이런 나를 다독여 주고 칭찬해 주기보다는 더 잘 해 내지 못한 것, 실수한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자책하는 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 왔는데도 자신이 가진 문제들을 해결받지 못하여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지 못하는 성도들을 보면 그렇다. 하나님 앞에 문제들을 가지고 나아가 맡기고 기도하면 해결해 주신다고 했는데 우리는 왜 어찌할 바를 모르며 고통가운데 지내는가? 무엇이 문제일까?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중요한 한 가지는 자신의 마음상태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이해부족에서 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 인정받는 데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을 살피고, 이해하고, 돌보는 데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네 가지 밭의 비유’ 를 통해서 우리의 다양한 마음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씨 뿌리는 자와 씨는 똑같지만 씨가 떨어진 밭(마음)은 네 종류 - 길 가, 흙이 얕은 돌밭, 가시떨기, 좋은 땅 – 로 각각 다르다. 같은 시간에, 같은 예배당에 앉아서, 같은 목회자로부터, 같은 설교 말씀을 듣는데도 받은 은혜와 깨달음은 각각 다르다. 마음 밭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삶이 다를 수 밖에 없다. 마음이 중요하다. 내 마음을 들여다 보여야 내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고, 내 마음의 상태를 알아야 좋은 마음 밭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자신의 마음 밭을 살피고 돌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 과정은 심리학을 통하여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심리학이라고 하면 무조건 비성경적인 학문으로 치부하여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어쉽지는 않다. 하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반은총의 한 영역으로서의 신학과 심리학의 통합의 관점에서는 얼마든지 성경적 인간이해, 마음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내 마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배우다 보니 내 마음, 나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었다. 내가 왜 늘 그런 패턴의 사고를 하고, 말이나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지 이전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나 자신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가족들과 주변 이웃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이해의 눈을 뜨게 되었다. 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시작되니 남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어지게 되었다.
나는 소중한 존재이고 나와 다른 어느 누구도 역시 소중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나(너), 이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나(너),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나(너),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있는 나(너), 감정을 가진 존재이기에 상처받기 쉬운 나(너), 이런 나(너)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고, 다독여주고, 사랑해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하나님의 사랑스런 자녀로서의 나(너)를 사랑하는 일은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다.
몸에 이상 증후가 나타나면 우리는 곧바로 의사를 찾아가 진료도 받고, 검사도 받고, 치료도 받는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때는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는다. 참고 기도하는 것만이 믿음좋은 사람의 태도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과 감정을 억누르거나, 지나치게 헌신(?)하거나, 관계의 어려움을 겪으며 누구와도 어디에도 맘 편히 정착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몸의 병은 마음의 병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많다. 올 한 해는 무엇보다도 우선으로 자기 자신을 돌보는 일에 관심을 가져보면 좋겠다. 연초에 세워놓은 여러가지 목표들을 잘 이루어가려면 몸도 건강해야 하지만 마음도 건강해야 한다. 자신의 마음 밭을 잘 살펴주고 관리해 주는 일에 관심을 기울였으면 좋겠다. 그리스도인의 마음 이해와 관리에 대한 책도 읽고, 유투브에 있는 유익한 강의도 선별하여 시청하면서 자신을 건강하게 세우는 일에 힘썼으면 좋겠다. “모든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페이팔로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