틈틈이 ‘노자’를 읽고 있습니다. 3장에 나오는 ‘위무위(爲無爲)’라는 표현을 제가 가지고 있는 책(박은희 역해)에서는 ‘하지 않음을 하면’ 으로 읽고 있습니다. 원래의 의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아니라 조작하거나 억지로 혹은 인위적으로 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합니다. 지도자로서 진정한 다스림은 꾸밈이 없이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위무위’라는 표현에 소위 ‘필’이 꽂혀서 저는 이 표현만 따로 떼어서 한동안 이런저런 생각의 나래를 펼쳐 보았습니다. 물론 성경도 항상 문맥 안에서 읽고 한 단어나, 한 문장만 따로 떼어서 읽으면 안 되는 것 같이 ‘노자’도 그러할 것이기에 제 생각이 ‘노자’가 의도한 것과는 영 다르기는 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한 ‘위무위 (爲無爲)’ 란
하지 않음을 하라,
함이 없이 하라,
하기는 하되 하지 않은 것처럼 하라,
하고도 안 한 것이다,
하고 안 했다고 하라,
한 것은 안 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도 하지 않은 것 같이 여기는 것’은 사실 ‘노자’ 2장의 가르침에도 등장하는 개념입니다. “공성이불거 (공이 이루어져도 스스로 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부유불거 (대저 오로지 머물지 않으니), 시이불거 (떠나지 않는다)”
노자가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을 터인데 예수님의 가르침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제자도의 핵심도 사실 이와 비슷합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막 8:34)” 바울의 고백도 그러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2:20)” 즉 '자기 부인 (self-denial),' ‘나 없음’이 제자도의 본질입니다.
크리스천 버전의 ‘위무위’란 그런 것이 아닐까요? 구원받았지만 내가 이룬 것이 아니기에 늘 감사와 감격함이 있는 것. 이런 저런 봉사와 섬김을 통해 공을 세우고도 나는 공이 없음을 인정하여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는 것.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지만 일하지 않았다고 손사래 치는 것. 무엇을 잘하고도 뽐내지 않는 것. 이 모든 것이 억지가 아니라 너무도 당연히 여겨지는 것. 이걸 ‘겸손’이라고도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머물지 않음으로 사라지지도 않는 (부유불거 시이불거)’ 사람들입니다.
‘하지 않음을 하는 것’을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저희들의 삶과 섬김의 중요한 원칙으로 삼는다면 ‘천국’은 산 위에 있는 동네처럼 이 세상에 훤히 드러나 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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