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나름(?)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매일의 삶에 기쁨이 없고, 평안도 사라져 습관적인 종교생활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털어놓는 성도들이 있다. 상황이 좀 더 심각한 경우, 오랫동안 몸담고 섬겼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수평이동을 하기도 하고, 아예 ‘가나안 성도(하나님은 믿지만 교회에는 출석하지 않는 성도)’가 되어버린 이웃도 있다.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구원을 얻는 것은 물론, 매일의 삶에서 주가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성령과 동행하는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일까?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고, 열심히 성경공부도 하며, 직분자로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Q.T.)에 힘쓰면 성령 충만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우린 배워왔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데이빗 A. 씨맨즈는 목회 현장에서 정규적인 사역을 통하여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하는 두 그룹의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한 그룹의 사람들은 열심히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함으로 인해 마치 오래되고 망가진 음반을 틀었을 때 바늘이 한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듯이 계속적인 패배감을 경험했으며, 다른 한 그룹의 사람들은 마치 자신들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 위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앞의 두 부류 중 어느 하나에 속하는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문제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나가지 않는 이유가 혹,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부족해서인가? 아니면, 자신의 내면에 있는 문제를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문제 없음’ 이라는 팻말을 세워 놓고 은혜로 포장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가 건강한 성도는 사람들과의 수평적인 관계도 원만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건강하다고 자부하는 성도들 가운데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데 왜 그런 걸까?
교회 안에는 정서적으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과거에 받은 상처가 아물지 않은 채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태초에 지음 받은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이 일그러진 결과다. 어릴 적 자신의 원 가정에서 부모로부터, 환경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각자의 내면에 자리를 잡으면서 견고한 진을 형성하고 쓴 뿌리가 되어 온 것이다. 금지된 선악과를 따 먹고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았을 때 아담과 하와가 한 행동은 무엇이었나?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만들어 입었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자 나무 사이에 숨었다. 자신들의 수치(상처)를 가리기 위해서다. 그들의 후손인 우리도 오늘날 영락없이 조상이 했던 일을 답습하고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인지 우리는 상처가 있으면서도 없는 척 부인하거나 그럴듯한 가면으로 한 겹 두 겹 세 겹 자신의 내면을 포장을 하고 살아간다.
‘죽어서 가는 천국’만이 구원 얻은 성도들의 선물이 아니다. 광야 같은 인생길을 가는 동안 풍랑 이는 바다 위의 배 안에서도 단잠을 주무셨던 예수님처럼 ‘평안하고 복된 삶’을 누리며 사는 것 또한, 당신의 자녀들에게 허락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소중한 선물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천국은 이미 시작되셨기에(Already, not yet) 우리는 이 땅에서도 천국을 미리 맛 보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와 감격, 평안이 사라진 습관적인 종교생활을 반복하고 있다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 분명하다.
나의 삶이 곤고한 이유를 다른 데서 찾지 말자. 가정에 불성실하고 책임감 없는 남편, 마음 문을 닫고 밖으로 도는 아내, 공부는 안하고 문제만 일으키는 자녀, 경제적인 어려움, 질병, 나에게 상처를 준 그 누구(?)때문에 내 삶이 힘든 것은 맞다. 그러나 그것이 곤고한 내 인생의 근본(1차) 원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을 비난하고 정죄하던 입을 막고 조용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라. 그 안에서 비로소 내 삶이 곤고한 진짜 이유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래, 내가 문제였구나!” “하나님, 제게 큰 문제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상처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래서 우리에겐 치료자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의 죄 값을 묵묵히 홀로 감당해 주신 분, 그분이 이해하지 못하실 상처는 없다. 치료하지 못하실 상처도 없다. 더 이상 두려움에 사로 잡혀 있지 말고 내 안에 있는 오랜 상처, 깊은 상처를 꺼내어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나가자. 더 이상 나무 사이에 숨지 말고, 상처가 없는 듯 포장하지 말고, 지체하지 말고, 곤고한 삶으로부터 나를 풀어주실 아버지께로 나아가자.
다른 것 구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을 샅샅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을 달라고 기도하자. 상처로 인해 상하고 찢긴 마음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자. 필요를 채워달라고 구하지 말고 나를 향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을 누리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해 달라고 기도하자. 간절한 마음으로 회개와 치유, 회복(변화)을 구하자. 성령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이다. 어쩌면 혼자서 이 과정을 감당하기 어려울 수 있다. 역부족일 수 있다. 주저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이라(호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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