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서 사십 년 가까이 살았던 조국을 떠나 타국에서 이민자로 살다 보니 가끔 쓸쓸하고 외로울 때가 있다. 연로하신 두 분 어머님과 형제들, 자주 만나고 싶은 친지들이 살고 있는 내 나라가 종종 그립기 때문이다. 그러다가도 잘못된 교육제도와 이로 인한 과열된 교육열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부모들과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나, 금 수저, 은 수저 운운하며 장성한 자녀를 위해 호화 결혼식, 호화 혼수에 집까지 마련해 주어야 마치 능력 있는 부모, 좋은 부모라고 여기는 건전하지 못한 결혼 풍속도에 대해 들을 때면 차라리 멀리 떨어져 미국 땅에 살고 있는 것이 다행이라는 이기적인 생각마저 든다. 그뿐 아니다. 힘에 부친 긴 교육과정을 마치고 사회에 발을 내디딘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꿈을 펼쳐 보기도 전에 스스로를 ‘3포(연애+결혼+출산 포기)세대’로, ‘5포(3포+내 집 마련+인간관계포기)세대’, 아니면, ‘7포(5포+꿈+희망 포기)세대’로 규정짓고 우울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땐 부정적인 고정 관념에 얽매이지 않고, 주변의 시선(체면, 인사치레 등)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미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물론, 이곳 한인 사회에도 대한민국의 사교육 현장 못지않게 과열된 교육열을 가진 학부모들이 있다. 아이비리그 대학 합격을 목표로 시간과 돈을 퍼부으면서 자녀를 몰아가는 부모들이다. 그들에게 좋은 소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희망하던 대학에 들어가긴 했으나 과중한 학업을 감당해 내지 못해 중도에 하차한 자녀들이 조용히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졸업은 했지만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직장은 잡았지만 적응하지 못하여 자립하기에 충분한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하고 캥거루 족 - 학교를 마치고 자립할 나이가 되었어도 자립하지 않거나, 취직을 했어도 독립적인 생활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여 사는 젊은이들을 가리키는 말 - 이 되어버린 자녀들도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이 모든 책임을 시대 탓이나 사회 탓으로 몰아갈 수 만은 없지 않은가?
성년 자녀 때문에 속상하다고 하소연해 오는 부모들이 있다. 나름 잘 키웠다고 생각했는데 다 자라서 이렇게 힘들게 할 줄은 몰랐다는 것이다. 부모는 부모대로 무너지고, 자녀는 자녀 대로 방황 한다. 무엇이 문제인가? 소통의 문제이며, 관계의 문제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부모-자녀관계’가 건재한 것 같았지만 안으로는 부실했던 것이다. 제대로 소통하지 못했던 것이다. 고등학교까지는 부모를 따라 착실하게 교회에 나왔던 아이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대학에 가면서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졸업 후에는 아예 교회를 떠나 살면서 세상 재미에 푹 빠져 사는 것 같다며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니까 언젠가는 제 자리로 돌아오게 해 주시겠죠” 라며 낙심하지 않고 그저 기도할 뿐이라고 말했던 지인의 마음 무거운 이야기가 생각난다. 아이들은 만 두 살(2세) 전후로 자아가 발달한다. 그래서 “싫어” “내 꺼야” “내가 할래” 라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부모는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부모 마음대로 아이를 주장하려고 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아이가 하자는 대로 해서도 안 된다. 이때가 하나님의 자녀로 성장하기 위한 ‘영적 기초’를 놓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임을 깨닫고, 부모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아이를 믿음의 길로 인도해야 한다. 아이의 행동(겉모습)교정에 초점을 두기보다 아이의 마음(내면)을 읽는 법을 배움으로써 아이와 소통하는 길을 닦아 놓는 것이 필요하다. 이렇게 시작한 자녀와의 소통은 자녀의 성장과정 내내 이어져야 한다. 영아기에 시작하여 유아기, 소년기, 청소년기를 거쳐 성년기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일방적인 지시나 명령이 아닌, 자녀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전제된 대화가 이루어질 때 비로소 건강한 소통이 가능한 것이다.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다”라는 전도서(3:1)의 말씀처럼 갓난아기인 자녀와 감격스런 첫 만남을 가졌던 때가 있었듯이 성년이 된 자녀를 부모로부터 독립시켜야 할 때가 있다. 잘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떠나 보내는 것 또한 중요하다. 그러려면 부모로부터의 건강한 독립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하루 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게 아니다.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다. 미리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는 것이다. 건강한 독립이란 신체적, 심리적, 경제적, 사회적, 도덕적(영적) 즉, 전인적인 독립을 말하며, 이것은 자녀가 제 배필(반쪽)을 만나 둘이 함께 건강한 가정을 이루는 것에서 시작된다.
요즘 동서남북에서 자녀의 결혼 소식을 알려오는 지인들이 제법 있다. 이제 부모들의 나이가 자녀를 독립시킬 연배에 이른 것이다. 필자도 얼마 후면 며느리를 맞이하게 된다. 아들을 떠나 보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그 아이를 낳아 가슴에 안았을 때 나도 이제 엄마가 되었다는 가슴 벅참을 느꼈고,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양육해 왔는데 어느새 성장하여 평생을 함께 할 자신의 배필을 만나 가정을 이루게 되다니! 부모 곁을 떠나게 되어 서운하다는 마음보다 이제 부모의 도움 없이 자기 인생의 바다를 항해할 만큼 성숙했다는 생각에 고맙고 대견스러운 마음이 앞선다. 그래서 아이와 처음 만났을 때 감격했고 감사했던 그 마음이 성년이 된 아들을 떠나 보내는 이 시점에서 또 다른 감격과 감사의 마음으로 활짝 피어나고 있다.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현장이 대한민국이냐, 미국이냐, 또 다른 어느 곳이냐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부모가 어떤 신앙과 가치관을 가지고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느냐가 훨씬 중요하다. 성년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건강하게 독립하여 자신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기초가 되고 원동력이 되는 성경적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이 그리스도인 부모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자녀는 지금 어느 시기에 있는가? 자녀와의 좋은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가? 자동차를 자주 점검하고 잘 관리해 주면 안전하게 오래 탈 수 있듯이 자녀와의 관계도 자주 점검하고, 잘 관리하고 유지하면 자녀가 성년이 되어 독립하게 될 때 기꺼이 떠나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 24).” *
<kyejag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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