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자녀를 사랑한다면
미국에서 살면서 불편한 것 중 하나는 고장 난 전자 제품을 수리 받는 일이다. 몇 년 전, 필자가 구입한 씨디 플레이어(CD Player)가 그렇게 오래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고장이 났다. 한국 같으면 가까이에 있는 수리점(after-service center)에 맡겨 고치면 한참은 더 사용할 수 있을 텐데 그럴 수 없어 속상하다고 하니 모두들 한 목소리를 낸다. “어휴, 번거롭게 뭘 고쳐서 써요. 요즘 시대에? 미련 없이 버리고 그냥 새 거 하나 사세요. 다들 그렇게 하고 살아요. 괜스레 속 끓이지 말고…..” 건강하지 않은 결혼생활을, 맘에 들지 않는 배우자를, 수리가 필요한 전자제품에 비유하는 것이 적절치는 않아 보이지만 물건이 아닌 사람이야 말로 쉽게 무시하거나 포기해서는 안될 더 소중한 존재가 아니던가? 고장 난 전자 제품은 그 분야의 기술자가 잘 고칠 것이고, 고장 난 배우자(사실은 쌍방의 문제이지만)로 인한 불행한 결혼생활은 그들을 만드신, 가정이라는 제도를 만드신 분이 가장 잘 고치실 수 있지 않겠는가?
“애들 때문에 살아요. 남편한테는 더 이상 기대하는 거 없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 갈라서고 싶지만 아이들에게는 못난 아빠라도 없는 것 보다 있는 게 낫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꾹꾹 참고 사는 거에요. 애들이 커서 결혼할 때까지만이에요.“ 애들 때문에 산다고 하지 말라. 그리고 남편에게 가야 할 관심까지 쏟으면서 무리한 기대도 하지 말라. 아이들은 자신(엄마)만의 분신이 아니고 적어도 50%는 남편(아빠)을 닮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이렇듯 마음이 떠난 결혼 생활을 지탱해 가면서도 주일이면 어김없이 교회에 나가 예배 드리고 봉사도 한다. 예물을 드리려고 하나님 앞에 나갔다가 형제와 불화한 일이 생각나거든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는지, 예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라(마5:23-24).
A는 남편과 불화한 지 오래다. 결혼 초기부터 관계가 심상치 않았다. 그런 가운데서 아이가 태어났고, 불안정한 가정 분위기였기에 부모와의 건강한 애착을 이루지 못한 채 자라갔다. “아이가 참 똑똑하네요?” 라고 칭찬해 주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부모의 마음은 내심 흐뭇했지만 볼 수 없는 아이의 마음 속 상처는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처한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렇듯이 그들 역시 상처받고 있는 아이를 위한 노력보다 서로 자기의 입장만을 내세우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아이는 ‘공부 잘하는 착한 아이’로 자라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된 아이는 본격적인 방황을 시작했고, 그런 아이를 바라보아야 하는 엄마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 엄마는 자신의 기도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런 사태가 벌어졌다면서 자책하고 있지만 아이는 “하나님이 있다면 왜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하냐며 그런 하나님은 믿지 않겠다.” 고 어긋장을 놓았다.
부모가 불화한 가정에서 자랐거나,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이야기가 무엇일까? “저희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무엇인지 아세요?” “엄마(아빠)가 왜 이 고생을 하는 지 알아? 다 너희를 위해서야! 그러니까 딴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알았어?” 이것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지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화목한 부모와 함께 사는 것이다. 부모의 불화는 아이를 중간에 앉혀놓고 부모가 양쪽에 앉아 시소(see-saw)를 타는 것과 같다. 아이는 아빠와 엄마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가 되면서 급기야 불안, 두려움, 위축된 감정에 사로잡혀 주눅이 들게 되면서 결국 자신감 없는 아이로 자란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것처럼 말이다.
부부가 화목하지 않은 가정의 자녀들이 어릴 때는 숨을 죽이고 있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눈에 띄게 달라진다. 반항의 정도가 심각해 지면서 거친 언어와 비행이 이어진다. 학교 생활에 게을러지고, 수업에 빠지는 날이 많으며, 품행이 바르지 않은 친구들과 어울려 건전하지 않은 일(?)에 몰두하기도 한다. 그나마 주일마다 따라 나셨던 교회에도 더 이상 가지 않겠노라고 선언한다. 그 뿐인가? 자식을 제대로 키우지 못할 거라면 왜 낳았냐며 대들기도 한다.
부모도 아이도 행복하지 않은 인생, 이런 인생을 살라고, 이런 가정을 이루며 살라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귀한 생명을 버리신 걸까? 예수님께서는 이미 모든 대가를 치르셨다. 문제는 그 분의 능력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확신 없는 믿음과, “인내와 용서, 사랑은 우리 부부에겐 해당사항 없어요.” 라고 생각하는 불신앙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그리스도인 가정들 가운데 ‘이혼’만이 답이라고 생각하는 부부들이 늘고 있는 것 같다. 참을 만큼 참았기 때문에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다. 서로 원수처럼 사느니 차라리 헤어져서 각 자 마음 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결혼은 처음부터 하나님과 무관했나? 신앙생활에도 위기가 찾아오듯이 결혼생활에도 위기가 찾아 올 수 있다, 문제는 이 위기를 선용하여 극복할 것인가 아닌가에 달려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 가운데 있는 가정들을 잘 알고 계신다. 그들이 버려야 할 것이 무엇이고, 바뀌어야 할 것이 무엇이며, 배워야 할 것이 무엇인 지 너무도 잘 아신다. 그러기에 문제가 있을 때 그분께 나와 엎드려 귀를 열어야 하는 것이다. 가정(가족)을 고치고 바로 잡는 일은 하나님의 영역이다. 그런데 부부들이 무슨 자격으로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가로 막고 자신들의 이기심을 따라 결론을 내리는가 말인가!
질병도 초기에 발견해서 적절한 치료를 받으면 회복될 수 있는 것처럼 부부 불화도 초기에 발견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면(둘이서 해결하기는 힘들다) 얼마든지 화목한 부부로 거듭날 수 있다. 자녀를 위해서 하는 수 없이 참고 산다거나, 자녀를 위해서 이혼을 결정했다고 말하지 말라. 자녀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부모가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다. 자녀들은 그런 가정에서 자라고 싶어 한다. 부부 사이에 불화가 시작될 때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비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문제와 대면하라. 주저하지 말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상담자를 찾으라. 여러분의 가정이 불화로부터 벗어나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 된 도리이며, 진정으로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것이다. 이계자(뉴욕가정사역원장)
페이팔로 후원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