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 May 30, 2024   
부활에 미친 사람

03/22/24       한준희 목사

부활에 미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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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시절 좋아했던 여학생이 있었다. 어쩌다 알게 된 그 여학생에게 미쳤다고나 할까, 도무지 머리에서 떠나지를 않았었다. 공부가 뭔가 온통 머릿속에 그 여학생만 가득했었다. 기회를 만들어 동네 제과점에서 만나기로 한 전날, 밤을 꼬박 새었다. 혹시 안 나오는 것은 아닐까,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쩌나, 혼자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나올까, 무슨 옷을 입고 나갈까, 별별 생각이 머리를 쥐어짰다.  

약속 시간 한시간 전 만나기로 한 제과점을 몇 바퀴 돌았던가, 그렇게 시간이 안 가는 것을 경험해보긴 처음이었던 것 같다. 역시 예상대로 친구 한명을 데리고 나왔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 얼마나 앉아서 이야기했는지 기억에는 하나도 없다. 다만 이 세상에 그렇게 예쁜 여학생을 처음 보는 것 같았다. 여자가 이렇게 예쁘구나 하는 느낌도 처음 받았다. 

나는 그렇게 한 여자에게 미쳤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미쳤던 나의 모습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밥 먹을 때도 그 여학생, 공부시간에도 그 여학생, 방과후 집에 오는 그 시간에도 혹시나 우연히 만나지는 않을까 온통 생각이 그 여학생에게 집중되어 있었던 철모르는 풋내기 사랑을 가져 본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때 어머님을 따라 삼각산 기도원에 갔었다. 그때 기도원 안에서 들려오는 그 많은 성도들의 기도소리를 처음 들어 보았는데 그게 방언기도라는데 큰 충격에 빠졌었다. 기도를 많이 하면 저런 방언기도를 할 수 있다는 말에 정말 나도 방언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미치도록 기도했다. 또 그날 집회에서 하시는 말씀에 또 충격을 받았다. 종말의 징조를 하나씩 말씀해 주는데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나를 흥분되게 만들었다. 

주님께서 곧 이 땅에 재림하시고 성도들이 휴거한다는 말씀,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부활의 말씀이 사실로 받아지면서 말씀에 미쳐버렸었다. 그 후로 난 예수에 미쳐버렸다. 온통 내 생각에는 예수님의 말씀 외에는 들려지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특히 사람이 죽은 후 부활한다는 말씀이 믿어졌고 죽어도 난 다시 산다는 것에 미쳐서 많은 사람들에게 내가 죽었다 다시 산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충동이 나를 미치게 했다. 그래서 오히려 죽었으면 하는 생각도 가져보았다.

그것이 바탕이 되어 결국 난 가족을 뒤로 하고 좋은 직장 내던지고 주를 위해 살겠다고 목사가 되어 미국 땅까지 왔다. 그런데 도무지 미쳐지지가 않는다. 예수 위해 목숨까지 건 목사가 예수가 그렇게 미치도록 좋아져야 하는데 미치도록 좋아지지가 않는다. 나는 예수님이 좋은 걸 어떡합니까. 찬양을 하면서도 내 속에는 솔직히 그렇게 좋다는 감정이 일어나지를 않는다.

정말 예수에 미쳐보고 싶었다. 그래서 기도원을 2번이나 올라가 금식기도를 해 보았다. 미치도록 부르짖고 매달려 보았지만 남는 건 배고픈 것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성경을 찾아보니 예수에게 미친 인물이 등장한다. 그래서 유심히 관찰해 보았다.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자신이 일평생 배운 학문을 배설물처럼 버린다니 이게 미치지 않고 버려질 수 있을까.

예수 때문에 그렇게 매를 맞고 또 태창에 찔리고, 잠을 못자고, 먹지 못하고 같은 동족에게 살해의 위험을 피해 다녀야 했고 멸시당하고 조롱당하고 급기야 돌에 맞아 죽어 성 밖으로 내 쳐버려진 몸을 다시 일으켜 그 돌에 맞은 장소로 다시 들어가는 이 미친사람이 누구냐 말이다. 

우리가 잘 아는 바울 아닌가,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미쳐버린 동기가 뭘까. 맞다!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미쳐버렸다. 그런데 바울이 전한 서신을 보면 예수에게 미쳐서 그렇게 예수예수 하면서 외친 내용이 딱 2가지다.  하나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또 하나는 예수는 우리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다. 그걸 미치도록 전한 사람 아닌가.

예수 만나서 미쳐버린 사람이 외쳤던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 그것 때문에 그렇게 미친 듯이 복음을 전했던 것이라면 나도 그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미쳐있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말이다.  

과거에 말씀을 잘 몰랐던 시절, 그때 예수에 미쳐서 죽고 다시 사는 것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신학을 10년 가까이 공부하고 목회를 30년 넘게 하면서 얼마나 말씀을 많이 연구했던가, 그렇게 많이 알고 또 그 예수를 전하는 목사인데 왜 예수 죽으심과 부활이 나를 흥분시키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는 사람이 왜 미치는지 정신과 의사가 아니라 잘 모른다. 왜 한 여자에게 미쳐서 그 여자만 보이는지, 왜 말씀 한마디에 충격을 받고 예수에 미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는지는 모른다. 다만 말씀을 더 많이 알뿐 아니라 나름대로 정치 경제 문화 의학 과학의 모든 지식들 얄팍하게나마 접해 보았다면 이제는 이성적으로 분별력이 생겼으니 더 예수의 죽으심과 부활에 더 미쳐 있어야 정상 아닌가. 그래서일까 나도 헷갈린다. 예수에 미쳐야 정상인가 세상 것에 미쳐야 정상인가.

장례 예배를 집례하면서 부활을 설교 했건만 그 설교는 죽은 사람에게 한 설교이지 나와는 상관없는 부활 아니었던가, 도대체 뭐에 미쳐 있어야 바울같이 피투성이가 되면서까지 그렇게 예수 부활을 미친 듯이 전할까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그때 눈이 삐었는지, 맛이 좀 갔었는지는 몰라도 차라리 그렇게 한 여자에게 미치듯이, 예수님 말씀에 미치듯이, 그렇게 미친 삶이 내 인생에 마지막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크다.

미친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는데 미쳐지지는 않고 부활주일에 감사헌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거기에 미쳐있는 것은 아닐까.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가로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정신 차린 말을 하나이다 (행26:2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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