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May 20, 2024   
  크리스마스 폐기론

12/15/23       한준희 목사

  크리스마스 폐기론


어린시절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그때 그 크리스마스 날은 교회에서 캔디와 과자를 잔뜩 받아가지고 오는 날로 기억된다. 먹을 것이 흔치 않았던 그때 푸짐한 선물을 받았던 그날은 일년 중 가장 기다려지는 날로 기억된다.

60여년 전 난생 처음 연극이라는 무대에 서서 동방박사 1, 2, 3 중에 한사람으로 출연하여 많은 성도들로부터 박수를 받았던 그 연극을 한 날이 크리스마스였다. 

그때 왜 예수님이 이 땅에 탄생되어야 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그냥 좋은 날이었다. 캔디를 가장 많이 먹는 날, 비록 연극이지만 영화 속에 주인공처럼 흥분되어 무대 위에 섰던 내 생애 최고의 날, 그래서 크리스마스가 좋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께서 왜 오셔야 했는지에 대해 너무 잘 알고 또 오신 예수님을 전하는 목사가 되어 또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이 한다. 교회에서는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고 교회 밖에는 휘황찬란한 오색가지 전등을 걸어서 오신 예수를 환영하는 장식을 꾸며 놓았다. 그날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면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하나도 즐겁지 않은지 모르겠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찬송도 했는데 사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풍성하게 선물도 받았는데 하나도 흥분되지 않는다.

이제 나이가 들어 감정이 사라져서일까, 

그래서일까 올해는 집집마다 꾸며 놓은 크리스마스 장식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30여년전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를 드리고 감탄이 나올 정도로 크리스마스 장식을 잘 꾸며논 집을 찾아가 애들과 함께 사진도 찍으면서 적잖은 감동을 느꼈던 그 성탄절이 이제는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가 이럴진대 지금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와의 전쟁으로 희생양이 된 팔레스타인들은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지옥으로 변한 가자지구는 지금도 아비규환이다, 하루종일 물한모금 먹지 못하고 먹을 양식이 없어 몇날며칠을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다. 어쩌면 그곳이 진정한 예수님의 탄생이 필요한 곳 아닐는지,

아무리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 해도 크리스마스 하루는 휴전을 했던 전쟁사가 기억된다. 그런데 소위 이스라엘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를 외면하고 전쟁을 지속하는 이스라엘에게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하루라도 휴전하고 죽어가는 팔레스타인들에게 먹을 것이라도 선물하자고 하면 뭐라 할까, 

크리스마스를 외면하는 이스라엘, 크리스마스가 뭔지도 모르는 팔레스타인들에게 크리스마스는 있으나마나 한 날이고 있어야 할 이유도 없는 날이 크리스마스 아닐까, 그러니 너희들 하마스들은 악마이고 우리는 천사들이다, 너희들은 굶어 죽든, 총에 맞아 죽든 마땅히 받을 벌을 받는 것이기에 그들을 불쌍히 여길 이유도 없고 또 먹을 것을 줄 이유도 없는 존재라 할찌라도 적어도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물 한 모금이라도 모금하여 가져다 주어야 진정한 크리스마스를 알리는 것은 아닐까 여겨진다,   

도대체 왜 크리스마스를 만들어 놓은 것일까, 차라리 크리스마스를 폐기시키고 주일마다 오신 예수님을 향해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것이 차라리 낫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진심이 사라진 크리스마스, 기쁨이 사라진 크리스마스, 감동이 없는 크리스마스, 형식만 남아 있는 크리스마스라면 차라리 폐기되어도 될 절기 아닌가 생각된다.

크리스마스를 폐기했다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섭섭해 하실까, 아니 오히려 예수님 오신 날은 기념하자고 정해 놓고는 정작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필요 없는 존재로 만들어 가고 있는 현실을 더 섭섭해 하고 계시지는 않을까 생각이 든다,   

몇 년전 썼던 칼럼이 생각나서 다시 그 글의 일부를 써본다. 

어느 교회에서 성탄에 대한 연극을 하였단다. 주인공인 마리아, 요셉, 헤롯 등 등장인물을 선정하고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그런데 약간 저능한 아이를 가진 학부모가 자기 아들이 연극을 하고 싶다고 이번 성탄 연극에 배역을 달라는 것이었다. 어쩔 수없이 배역을 맡겨야 하는데 특별한 배역이 없어 여관집 주인역할을 맡겼다는 것이다, 대사가 단 한마디 “방 없는데요”이 대사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이 아이는 열심히 연습했다 “방 없는데요”이 한마디를 외우고 또 외우고 연습 때마다 방 없는데요 대사를 완벽하게 익히고 연극을 시작한 것이었다.

연극은 순조롭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요셉과 마리아가 여관집 앞에서 “방이 필요합니다. 방 있나요? 우리 아내가 임신 중에 있어요”그 순간 이 아이는 “방 없는데요” 말을 해야 하는데 도대체 대사를 까먹었는지 말을 안 하고 서있는 것 아닌가, 순간 요셉은 기지를 발휘하여 대사를 반복했다 “방이 필요합니다. 우리 아내가 애를 낳아야 해요” 당연히 “방 없는데요” 나와야 할 대사가 안 나오면서 연극은 진행이 안 되는 것 아닌가, 순간 이 아이는 진짜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자기 집에 방이 있으니 집으로 가지고 요셉과 마리아를 데리고 무대 밖으로 내려가는 것 아닌가. 연극은 엉망이 되었고 관객들은 웃음으로 연극을 마쳤다는 이야기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현실과 연극을 구별 못하는 바보 아이의 이야기이지만, 그 아이의 진심처럼, 연극보다 가슴 메이는 진심이 더 필요한 시대가 아닌가 느껴지는 이야기다.

오늘날 성탄연극도 성탄 찬양도 성탄 축하예배도 그리고 성탄 축하예물도 다 있는데 정작 오신 예수님이 없는 진심이 사라진 시대가 아닌가 여겨지기에 뜬금없는 폐기론을 주장한 것뿐이다.

형식만 남아 있는 성탄절, 

그 성탄절이라도 지켜야 교회재정이 유지될 수밖에 없기에 성탄절은 폐기될 수없는 모양이다.

"맏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눅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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