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April 21, 2024   
   옳은 일에 Yes, 틀린 일에 No

10/21/23       김창길 목사

   옳은 일에 Yes, 틀린 일에 No


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만백성이 나갈 길/옳은 길 따르라 의의 길을/ 세계 만민이 의의 길/ 이 길 따라서 살 길을/ 온세계에 전하세/ 만백성이 나갈 길/어둔밤 지나서 동튼다/ 환한 빛 보아라 저 빛/ 주 예수의 나라 이땅에/곧 오겠네 오겠네 (새찬송가 516)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질서와 무질서, 합법과 불법, 선과 악, 두갈래에 부대끼며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한쪽 편을 선택하게 됩니다. 성경에 실려진 인물도 분석해보면 두 부류에 속한 인물들입니다.

어린시절 어머님으로부터 손해를 당하더라도 정직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학교선생님은 불의가 아닌 정의를 구현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았으며 교회 목사님에게서 성도는 핍박 중에도 목숨을 내놓고 정의 편에 서야 한다는 설교를 듣고 자라왔습니다.

난 정작 목사가 되고 나서 아모스 처럼 불의에 대한 칼날같은 설교도 부족했고 그렇다고 정의와 진리를 지키기 위해 숨죽이며 겸손히 옳은 걸 따르는 삶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 정의와 진리가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UN을 비롯해 국가 안에 여러 정의들 주창하는 단체들이 많지만 세상에 불의와 부정, 명분을 내 세운 권모술수는 이 세상을 암담하게 꼬이게 합니다. 고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소크라테스는 법의 질서가 파괴된 어두운 세상을 밝히려고 독배를 마셨습니다. 그래도 무질서는 계속되었습니다. 철인과 현인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옳바른 세상은 되지 못했습니다. 

이천년 전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셔서 인간들에게 의롭게 사는 모형을 보여주셨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사회구조와 제도나 문화가 해내지 못하는 정의와 진리 부재인 사회를 인간을 개혁함으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옳은 것이 바로 세워지는 세상은 예수님이 하신대로 정직하게 사람을 위해 만드는 세상입니다. 법과 규칙을 위한 세상만이 아니라 사람을 차별없이 사랑하는 나눔의 세상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고백하는 선배들은 부단히 교회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인간의 부족함을 지적해 왔습니다. 교회에 모인 성도들이 기도하고 모든 일을 작정하지만 그 결정 중에 한 일부 분은 실수나 오류가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뾰족한 인간 들이 결정했기 때문 입니다.

체코슬로바키아의 순교자 죤후스 (John Huss 1369-1415)는 보헤미안들이 자국어로 미사(예배) 드리는 것과 신부만이 성찬을 받는게 아니라 평신도도 성찬을 받게 하는 것을 주장하다가 교황의 반대로 화형받아 순교했습니다.

죤 후스는 교황에게 절대복종하는 게 당시 교회법이 었지만 성경적 가치관에 위배되는 사실에 항거했던 것입니다.

마틴 루터 (Martin Luther) 사제도 천주교회가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부당한 모금운동하는 등 잘못된 가르침에 항거하는 95개 조항을 내걸고 대종교개혁을 단행했습니다.

교회의 전통이 성경보다 우위에 있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후스, 루터, 깔뱅, 츠빙글리 등 선각자들은 교회 안의 잘못된 가르침에 "아니요"를 대변한 것입니다.

교황의 말이라고, 오늘의 교회 지도자의 말이라고 무조건 순종하는게 아닙니다. 성경적으로 양육할 때 순종하고 따르고 지켜야 하지만 비성경적이고 비상식이고 사익에 기초한 교회 행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개혁교회의 전통입니다.

윗사람을 존경은 해야하지만 잘못된것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성서적도, 신앙적도 아닙니다. 성경을 전체로 보아야지 부분적인 것을 전부인양 해석하면 안됩니다.' 잘못하면 교회지도자를 우상으로 만드는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5: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성경말씀대로 옳은 것엔 “예” 틀린 것에는 “아니요”가 분명해야 하고 그 뒤에 토를 달면 안됩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님은 미국에서 흑인의 인권을 침해하여 학교, 병원, 회사채용, 버스좌석까지 차별대우를 받는 것을 항의하여 흑인 인권해방 궐기를 무저항운동으로 하다가  총탄에 맞아 서거했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흑인과 소수민족의 인권과 자유를 위해 성서의 가르침을 실행한 것입니다. 미국에서 백인 기독교인이 다수라 하더라도 성경진리의 잘못된 부문에 참가해서 오늘날 미국에 다인종 인권이 존중되며 평등하게 살 수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는 인종, 문화, 언어의 장벽을 넘어 하나 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서 자기를 위한 외침이 아니라 흑인을 위한 소수민족을 위한 외침을 봅니다. 예수님의 인간을 위한 사랑, 즉 십자가 상의 죽음을 생각해 봅니다. 교회 지도자는 자기를 위해 사는게 아니라 교인과 교회를 위해 사는 것입니다.

세상에 아무리 물질주의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팽배해 가더라도 교회만은 세속주의를 탈피해야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수 있지 않을가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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