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 May 20, 2024   
      낮은 데로 임하소서

06/09/23       한준희 목사

      낮은 데로 임하소서


아내 친구가 뉴욕을 방문했다. 공항 픽업부터 함께 식사도 하며 많은 시간 교제를 했다. 아내 친구는 한국에 명문대를 나와 미국 명문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재능과 학식을 겸비한 분이다. 이런 분이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이라 할까, 가난한 목사 사모가 되어 목회하다 선교사로 사역하였단다.

이번에 선교 사역지를 타국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뉴욕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분이 뉴욕방문 중 만날 분들을 이야기하는데 수준이 나와는 좀 다르다. 메릴랜드 주지사의 아내와도 만나야 하고 이름만 대도 알만한 오케스트라 단장과도 만나야 하고 자신의 모교에서 교수가 된 친구도 만나야 한단다.

수준이 서민 수준이 아니다, 거의 미국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분들과 교제를 하는 그런 분이다. 어쩌면 나 같은 사람과는 좀 격이 안 맞는 수준의 아내 친구인 것 같다. 물론 아내도 좀 부담스럽기는 해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이니까 반가움으로 대해 주었다.

그런데 이분의 이야기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지금에 현실이 좀 불만족스러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즉 자신이 미국에서 전공한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미국에서와 한국에서 얼마든지 유명세를 얻을 수도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 재능을 다 선교사역을 하면서 사장이 되게 해 버린 것 같다는 안타까움이 이분 말속에서 느껴진다, 그래서일까 수준 높은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 많은 말 속에 후회스러움도 보인다. 이제 나이 들어 재능을 발휘할 기회가 다 상실된 것 같아서일까 수준 높은 친구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수준을 동급으로 여기면서 곁들여 한다.

이 분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 전 세 군데의 중남미 선교 사역지를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산간벽지, 형편이 어려운 오지를 찾아갔을 때와 빈민촌에서 쓰레기를 뒤져 필요한 물건을 내다 파는 어려운 이웃들이 생각이 난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해 주는 것과 몇 푼의 돈을 지원해 주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돌아서면서 표현할 수 없는 감사가 넘친다.?

하나님께서 나를 들어 저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 기도해주고 용기를 주는 도구로 사용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감격스러운 눈물이 핑 돈다. 도움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도울 수 있는 자리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과거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깝게 접근해 보았던 유명인사들이 꽤 많았다. 영화 제목만 말해도 감독이 누군지 알만한 사람, TV나 영화에서 최고의 인기를 끌고 있는 탤런트들, 이어령 교수 같은 유명 교수들, 당시 실세라고 하는 장관들, 최고의 미인 미스코리아들 이런 분들을 자주 대하는 위치 다 보니 내가 대단한 인물이 된 것 같고 나도 그런 위치에 있다는 착각을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지낸 적이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유명인사가 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어쩌면 열등의식이라 할까, 대리 만족이라 할까, 그렇게 높은 수준의 사람이 되고 싶은 꿈을 그들 속에서 찾으려 했던 미련함이 젊은 시절에 가졌던 착각이었다.

하나님께서 그런 위치에 있던 나를 끌어내려 목사가 되게 했고, 목회하면서 내 주위에는 내가 필요한 어려운 분들이 뜻밖에 많다는 사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감옥에 갇힌 분들, 양로원에서 노년을 병마와 싸우고 계신 분들, 병원에 입원해 계신 분들, 자살을 한 분의 가정, 이혼하여 혼자 사시는 분들, 돈 1불,2불을 더 벌려고 아귀다툼을 하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이 내 목회의 동반자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처음에는 왜 이렇게 어려운 분들만 우리 교회 교인들인가, 불평도 했지만, 그들과 함께하면서 나는 목회에 행복이 무엇인지, 왜 그들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의미를 알게 하셨는지 세월이 지나고 보니 인생에 행복은 높은 데서 찾기보다 낮은 곳에서 참 행복이 있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신학교 동기가 기억난다. 교단 총회장이 되었고 수천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사가 된 친구다.학교에 다닐 때는 같이 라면도 먹고, 같이 잘 어울렸던 친구인데 지금은 전화조차 잘 안 받는다. 한국에 가도 만나기가 힘들다. 총회 석상에서 만나보니 그저 악수만 하고 땡이다. 좀 섭섭한 마음이 들지만, 수준이 달라진 친구라고 생각되어 이해하고 넘어갔다.

높은 단상에서 비슷한 급에 목사들과 나란히 앉아 있고, 한국 교계를 대표하는 분이 되었기에 청와대에 들어가서 대통령과 사진도 찍고, 중경 총회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나 같은 이름없는 목사 정도야 눈에 뜨일 리가 없지 않은가.

뉴욕 교협 회장이 되면 수준이 달라지는 것일까, 늘 단상에 올라가 축사를 하고 설교를 하는 사람이 되고 맨 앞자리에 앉아 사진을 찍고, 높은 분들과 식사를 하는 모든 것들이 격이 높아진 탓일 게다. 사람은 그런 높은 자리에 앉다 보면 스스로 착각을 한다, 내가 수준 높은 목사가 되었다고… 교계 장이라는 것이 어려운 교회에 찾아가서 기도라고 한번 해줄 수 없는 직분인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목사를 만나 식사라도 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이 교계 장일까. 높아지다 보니 낮은 수준의 목사까지 만날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일까.

왜 예수님께서 그 영광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셨을까.

예수님도 낮아지셨기에 우리도 낮아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낮은 곳으로 가서 의미를 찾아보자, 어둡고 추한 곳으로 임해보자, 그 속에 우리의 기쁨과 행복이 있다는 것을 되새겨보자.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시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페이팔로 후원하기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63-15 Depot Rd. #2 Flushing, NY 11358
Tel: 718-414-4848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