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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의 포로된 자들

03/27/20       허경조 장로

코로나 바이러스의 포로된 자들


전혀 예상치 못했던 복병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2020년 벽두부터 전 세계가, 그리고 각자 개인마다의 삶이 흔들리고 있다.  이제는 익숙해진 마스크에 재택근무,  화상회의, 온라인 쇼핑과 동영상 시청이 주된 일과다.  ‘방콕’ 식구들을 위해 삼시 세끼 차려 내느라 지친 주부들로 인해 중국에서 코로나19로 이혼이 늘었다는 뉴스도 들려온다.

아무리 치명률이 낮다고 해도 최고의 방역은 개인위생, 그다음은 운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통제 불능,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공포감에 휘둘려서 각자도생, 말 그대로 자가격리에 돌입하고 교회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어진 주일 아침에 예배 시간을 기다리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며 컴터 키보드를 두둘기게 만든다.

주전 587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의 군대가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유대나라를 무너뜨린 후에 그들은 상당한 수의 사람들을 포로로 끌고 갔고 70년간의 포로생활을 하는 동안 유대인들은 바벨론의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성읍들에 머므르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로부터 시온(예루살렘)의 노래(아마도 시편)를 부르라는 요구를 받게 되며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할 때 부르던 노래를 바벨론 사람들의 여흥을 위하여 부르라는 요구를 받게 되었다.  유대 포로들은 자신들의 처한 비참한 상황을 슬퍼하며 이 시편을 지어 노래하게 될 때 예배할 성전을 잃어버리고 이방 땅에서 유배생활을 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슬퍼하며 그곳에서라도 예루살렘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하게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의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시편 137편 1절 - 4절)”

그런데 2600년이 지난 현재 우리 모두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포로가 되어 각자의 집에 갇혀 살며 주일 아침에 예배도 못 드리고 그나마 on line 예배를 드리게 되니 교회 공동체가 같이 모여 예배와 찬송을 드리던 때를 생각하며 유대인 포로들이 바벨론 강가에 앉아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던 그 아픔이 새삼 가슴에 깊게 다가온다.

역사는 반복되며 그러기에 우리는 역사를 고찰하며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전 587년 당시 유대인 포로들은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신명기 28;36)”의 예언을 뒤늦게 깨닫고 울었음을 상기하자. 우리가 현재의 습관적인 신앙생활에서 각자가 깨닫고 회개할 일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는 각자 회개의 눈물이 진정 필요한 시기이다.

회개의 눈물이 흘려진 다음 유대인 포로들이 행했던 일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회당제도는 바벨론 포로기간 중에 생겼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바벨론에 의해 성전은 파괴되었고, 이러한 상황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대신해 회당에서 모여 율법을 강론하고 시편을 낭독했다. 일견 생각해 보면 현재 교회의 공예배를 대신하여 드리는 일시적인 on line 예배가 회당의 역할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게 된다.

그러나 필자는 거기서 한걸음 더 나가 역사적인 회당의 모습을 드려다 보고 싶다. “이러한 회당의 출현은 유대교 역사에서 큰 변화를 가져왔다. 회당은 종교의식에 있어서 전적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 냈는데, 공적인 종교의식의 성격에도 극적인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즉 예루살렘 성전이 없어졌기 때문에 하느님을 섬기는 방법으로서 그때까지 핵심을 이루고 있었던 희생 제사가 기도와 종교적인 학습과 권고로 대체된 것이다. 공동체를 대표해 공적인 종교의식을 집행하는 것은 이제 더 이상 제사장(사제)의 전유물이 아니라 종교의식이 모든 이에게 개방되게 된 것이다. 이제 종교의식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처럼 종교의식이 거행되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바깥뜰에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되었고, 모두가 직접 종교의식을 이끌어 가는 주체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회당은 성전처럼 어떤 한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생겨났을 정도로 보편적인 기구로 자리 매김하게 되었다. ( 감리교 교육 마당에서 일부 인용)”

즉, 이제까지 익숙했던 교회의 예배 모습 - 예배에 참여하고 목회자의 인도에 따른 수동적이고 습관적인 모습에서 탈피하여야 된 다는 것이다. 공적인 종교 의식은 목회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예배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의 것이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직접 종교 의식을 이끌어가는 주체로 참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회당은 필요한 곳이면 어느 곳이든 생겨났음을 깨닫고 우리 모두의 삶 속에서 필요한 곳 어디든지 , 필요한 때 언제든지 하나님을 부르며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가의 의견은 최소한 몇 개월의 자가격리가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우리의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포로생활은 아직 몇 개월은 지속된다는 이야기다. 

코로나 바이러스에 포로 되어 흩어져 예배하는 동안 겸손히 무릎 끓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몸으로 함께 예배드리는 예배와 교우들을 향한 마음이 뜨거워지기를 기도한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같이 할 수 있다면 이 모든 어려움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고 그때 우리가 다시 만날 때 감격과 은혜 가운데 참되고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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