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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로 얻은 믿음으로 능동적으로 살 수 없는가?(7-8절)

03/23/20       박동식 목사

은혜로 얻은 믿음으로 능동적으로 살 수 없는가?(7-8절)


베드로전후서11

은혜로 얻은 믿음으로 능동적으로 살 수 없는가?(7-8)

 

 

베드로는 흩어진 믿음의 식구들에게 그들의 믿음이 훌륭함을 칭찬해준다그것은 그들이 가진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함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없어질 금보다 귀하다’(7a)는 것이다아무리 단단해도 금은 물질이기에 없어질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들의 믿음은 금보다도 견고하고 단단하다는 말씀이다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그들이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7b) 말한다

 

굳건한 믿음은 우리의 삶의 형편이 좋든 나쁘든나의 작은 지식으로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사는 것을 의미한다형편이 좋을 때 믿는 것은 어쩌면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이는 그러한 믿음은 이방인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그러한 믿음은 하나님을 자신의 ‘형편’에 가두는 것이다즉 나의 형편에 따라 하나님이 계시고계시지 않게 된다하나님이 계셔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이 좋으면 하나님이 계시고 그래서 그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지만우리의 형편이 나쁘면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게 된다우리의 형편이 하나님의 존재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면그것이 믿음인가?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는 시련이 참된 신앙에 세 가지 유익을 준다고 한다첫째시련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신앙이 ‘참인지 아닌지’를 구별해 준다둘째시련은 ‘신앙의 참된 아름다움과 고상함’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셋째시련은 신앙을 ‘순화시키고 강하게’ 해 준다.(1) 그러니 형편과 믿음이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시련이 더욱더 하나님을 믿게 해 줄 수 있고 또 그 믿음이 진정한 믿음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일 것이다

 

또한 자신의 작은 지식으로 이해될 때만 믿는 것도 믿음이 아니다그것은 하나님을 자신의 ‘지식’에 가두는 것이다우리 자신의 지식의 용량이 얼마나 될까우리는 세상의 지식을 다 아는가우리는 우리 자신에 관해서도 다 알지 못한다자기 몸의 장기 위치가 정확히 어디인지 아는 사람은 극히 많지 않을 것이다그러니 믿음이라는 것이 온전한 지식이 있을 때만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믿는 것이 비합리적인가칼빈 칼리지 교수였고 기독교 철학자인 앨빈 플랜팅가는기독교의 믿음을 부정하는 이들의 예를 든다논리 실증주의자들은“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거나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다” 같은 문장은 증명될 수 없기에 공허하다고 한다새로운 무신론자들은“나쁜 날씨와 충치를 제외한 모든 안 좋은 일이 종교 탓이라고 비난한다”는 것이다증명되지 않은 것은 받아들일 수 없고 종교가 사회에 기여 하는 선한 영향력은 무시하고 부정적인 것만 들추어내는 이들의 태도에 플랜팅가는 기독교 신앙 또한 합리성이 있음을 말해 준다.

 

  이러한 어려운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지닌 흩어진 믿음의 식구들에게 베드로는 그들이 예수님을 ‘직접 뵌 적이 없지만 그를 사랑하고’ 있으며지금도 ‘보지 못하지만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한다’고 그들의 믿음을 칭찬한다(8). 보지 않고도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하심’과 ‘성령의 역사하심’을 믿는 이들이 있다그들은 주님을 직접 뵙지는 못했어도 주님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며주님을 뵙지 못했지만 주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한다는 것이다이 믿음을 베드로가 칭찬했는데 하나님이 보시면 얼마나 칭찬하시겠는가.

그러나 반대로 보고도 못 믿는 이들이 있다증거를 보여 줘도 못 믿는 이들이 있다그 정도 되면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이다믿는 것은 증거도 중요하지만그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된다그렇다면 하나님이 계시다는 증거가 아닌 어쩌며 그 반대의 증거라고도 할 수 있는 고난과 고통과 시련이 있을 때 어떻게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보고도 못 믿으면 고난 가운데서는 더 믿기 힘든 것 아니겠는가?

 

여기서 은혜와 믿음의 삶의 관계를 네 가지로 살펴보자우리의 믿음의 삶이 어쩌면 너무도 수동적인지도 모르겠다은혜는 하나님에게서 받는 것이니 수동태다은혜에 능동태가 있을 수 없다그러나 그렇다고 은혜받은 믿음의 삶이 수동적이어서는 안될 것이다능동태여야 한다은혜가 수동태이기에 수동태로 살아가는 신앙은 하나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살아가는 신앙 같지만사실은 은혜를 내 삶을 적극적으로 살아가지 않아도 되는 면죄부로 여길 가능성이 높다이와 반대로 은혜를 능동태로 생각하여 은혜도 우리의 힘으로 받는 것이라 생각하면서 능동태로 살아가는 신앙은적극적으로 은혜를 구할 뿐만 아니라 삶 또한 적극적으로 살아가는 신앙이기에 한편으로는 자유주의적 경향이 있다또한 은혜를 능동태로 간주하면서 수동태로 살아가는 신앙은 적극적으로 은혜를 구하지만 삶은 그냥 사는 종교인의 모습과 비슷하다어쩌면 수동태이면서 능동태로 살아가는 신앙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삶이 아닐까 진단해 본다은혜는 받으니 수동형이지만 은혜받은 삶은 그 은혜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요구하니 능동형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얻어 살아가기에 그 믿음의 삶이 수동태인 것 같지만 우리의 믿음은 주님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고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따를 수 있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인 능동적인 믿음의 삶을 살 필요가 있다믿음의 출처가 수동태라고 믿음으로 사는 삶마저 수동태여서는 아니 될 것이다그것이야말로 은혜를 값싸게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1)조나단 에드워즈정성욱옮김『신앙감정론』(부흥과개혁사, 2005), 143-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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