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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대의 장자권

07/02/18       허용구 목사

이시대의 장자권


장자권이라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인물이 있습니다.에서와 야곱입니다. 두 사람은 쌍둥이였지만, 외모나 성품도 기질도 아주 달랐지만, 장자권에 대한 태도는 더 극과 극이었습니다. 에서는 장자권에 대한 애착이 많지 않았지만, 야곱은 집요할 정도였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가질 수만 있다면 무슨 일도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야곱은 에서와 팥죽한 그릇과 장자권을 맞바꾸는 거래를 합니다. 늙고 병든 아버지를 속여서 장자권을 가로채는 일까지도 서슴지 않고 야곱은 감행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야곱이 장자권을 쟁취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에서와 야곱의 삶은 참 많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에서는 에돔이라는 한 민족의 시조가 되지만, 야곱은 여전히 양을 치는 목자로 살아갑니다. 겉으로 드러난 성취라는 면에서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에서는 야곱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을 칭할 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칭할 정도로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서 야곱의 역할은 절대적입니다. 야곱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열두 아들을 축복하여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으로 세웁니다. 그래서 야곱의 열두 아들은 신약의 열두 제자와 함께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이 됩니다. 오늘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장자권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을 통해 주어진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 그리고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께서 당신의 몸으로 존재하는 교회를
섬기기 위해 주신 직분일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에도 장자권을 귀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하찮게 여기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고, 교회의 직분을 단순히 듣기 좋은 호칭정도로 탐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결국 오늘 이 시대도 이런 장자권에 대한 태도에 따라 따라 우리가 누리는 하나님의
축복도 많이 달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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