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 February 18, 2018    전자신문보기
희망을 잃은 그대에게

12/14/17       이상명 목사

희망을 잃은 그대에게


‘함석헌은 시 <삶은 아름답고 거룩한 것>에서 모든 생명의 소중함을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맹꽁이의 음악 너 못 들었구나

구더기의 춤 너 못 보았구나

살무사와 악수 너 못 해보았구나

 

파리에게는 똥이 향기롭고

박테리아에게는 햇빛이 무서운 거다

 

도둑놈의 도둑질처럼 참 행동이 어디 있느냐?

거짓말쟁이의 거짓말처럼 속임 없는 말이 어디 있느냐?

거지의 빌어먹음처럼 점잖은 것이 어디 있느냐?

 

그것은 정치가의 정의보다 훨씬 더 높은 것이고,

군인의 애국보다 한층 더 믿을 만한 것이고

종교가의 설교보다 비길 수 없이 거룩한 것이다

 

한갓 미물도 생명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정치가가 외치는 정의도, 군인이 지키려는 애국도, 종교가의 설교도 생명보다 귀할 수는 없는 법이다.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생명의 존엄함이 이러한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인간의 생명조차 자본화되어 가는 서글픈 세상 속에서 살고 있다.

한국에서 자살하는 인구의 비율이 10만 명당 31명이었다는 보고(2009년 기준)를 들은 적이 있다. 그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에서 2위, 아시아에서는 1위다. ‘자살명소’라는 오명을 지닌 미국 금문교의 1년 평균 자살자의 수가 30여 명, 한강에 투신하는 자살자의 수는 1년 평균 400여 명이라는 기사도 읽었다.

최근 유난히 우리 주변에 살 길이 막막해 하소연하는 사람들이 많다. 죽음의 수렁이 고난의 종지부라며 꼬드기는 염세적 목소리에 넘어가 자살의 대열에 투항하는 이들이 많은 것에 개탄스러움을 느낀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희망과 구원을 전하는 종교인들이 그렇게 많은데도 그 희망의 메시지가 그들에게 희망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참된 희망이란 모진 환경의 탓을 얼마나 하는가에 반비례한다.

“자신이 항해하고 있는 배를 제외한 모든 배는 낭만적으로 보이게 되어 있다”는 미국 시인 에머슨의 말처럼, 자신이 아닌 타인에게서 희망을 보는 사람은 늘 불행하다. 애이불비(哀而不悲), 낙이불음(樂而不淫)이란 말이 있다. 즉 ‘슬퍼하되 비탄에 빠지지 말고, 즐거워도 도를 넘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사람은 이 두 감정의 저울질을 잘해야 한다. 인생은 기쁨과 슬픔,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이라는 씨실과 날실이 서로 교차하면서 짜이는 한 조각 옷감과 같지 않던가? 기쁨과 행복으로만 짜인 인생이란 옷은 존재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과 죽음, 그리고 희망과 절망은 지호지간(指呼之間)이다. 그 둘은 태어나는 순간 헤어진 쌍둥이 형제였을 것이다.

어느 날 불현듯 맞이하는 무심한 죽음이 있어서 생명을 소중히 여기며, 날마다 찾아드는 절망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품으며 오늘 하루를 거뜬히 살아간다. 희망은 절망의 땅에서 피는 꽃과 같다. 그러나 그 모두가 궁극적 희망은 아니다. 희망이 이미 이 땅에 있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인간 세상에 참된 길이 없어서 스스로 길이 되셨다. 그분이 천국 복음을 가르치며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시는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었지만 그 어떤 길도 생명으로 통하는 길은 아니었다. 오히려 로마를 중심으로 자유와 생명과 인간성을 박탈하는 길들이 전 세계로 연결되어 확장되고 있었다.

자신이 달리신 폭압적이고 잔인한 십자가의 길을 전복하여 온 인류를 위한 생명의 길을 내어 주셨다. 아니 스스로 길이 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예수님의 손에는 십자가에 박혀 못 자국이 나기 전에 먼저 목수 일로 생긴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이미 예수님은 갈릴리 목수로서 자신과 타인의 절망을 대패질로 밀어내며 구원을 위한 길을 예비하셨다.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돌려놓기 위해 스스로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셨고, 자발적으로 하데스의 심연으로 들어가셨다.

그러기에 희망은 예수님의 길에 있다. 우리는 예수님이 걸었던 그 길을 함께 걷도록 요청 받고 있다. 비록 고난이 따르더라도 희망이 있기에 가야 하는 길이다. 절망에서 희망을, 죽음에서 생명을 길어 올리신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그분의 승리 속에 담보된 희망을 이렇게 선포한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댓글달기 (100자이내)

내용:

0 자   

댓글(0개)

  
인기 기사
최신 댓글

163-07 Depot Rd. Suite 208, Flushing NY 11358
Tel: 347-538-1587 Email: kidoknewsny@gmail.com

Copyright © 2011-2015 기독뉴스 All rights Reserved. Powered by Intonet Solu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