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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장터의 차이

08/03/17       이상명 목사

교회와 장터의 차이


“학생은 많아도 제자는 없고 교사는 많아도 스승은 없다.” 서글픈 교육의 현실태를 꼬집은 말이다. 현 세태를 두고 작금의 교사는 지식을 전하는 기능직으로 전락한 지 오래되었다는 자조 섞인 말들을 많이 한다. 진정한 스
승이 없으니 참된 제자가 나오겠는가?

중국 송대(宋代)의 작품인 《벽암록(碧巖錄)》에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병아리가 부화할 때, 알 안에서 병아리가 껍질을 깨려고 가녀린 부리로 온 힘을 다해 쪼아댄다. 세 시간 안에 나오지 못하면 질식하니 병아리는 사력을 다한다. 이때 귀를 세우고 그 소리를 기다려온 어미닭은 그 부위를 자신의 부리로 밖에서 쪼아 준다. 이처럼 병아리가 안에서 쪼는 것을 ‘줄(啐)’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를 듣고 화답하는 것을 ‘탁(啄)’이라 한다. 이렇게 ‘줄’과 ‘탁’이 동시에 일어나야 생명은 온전히 탄생한다. 스승과 제자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스승과 제자의 마음이 하나가 되어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무르익으면 어느 날 제자의 마음을 감싸고 있던 무지(無知)의 껍질이 툭 떨어져 나간다. 깨달음의 순간을 이름이다.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오는 과정이 그러하듯 제자가 태어나는 과정 또한 신비한 과정이다.

마태복음은 교회를 스승 예수께 배운대로 살아가는 ‘제자 공동체’로 규정했다. 그렇다면 초대교회에서 제자는 어떻게 태어나는가? 선포의 기능을 강조한 현대교회와는 달리 초대교회는 선포와 함께 실제 본보기 교육을 통해 제자를 길러내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바울이 회중들을 향해 자주 외친 권면이다. 교회 안에서 배울만한 모범과 전형이 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바울처럼 강조한 이는 없다. 그는 데살로니가교회 회중들이 주변 교회에 본이 되었음을 칭찬한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살전 1:6-7)

그리스도 닮음이 서로 닮음으로 확산되는 메카니즘이 초대교회 성장의 생생한 동력이었다. 바울을 본받은 사람이 이제 다른 사람을 위한 모범이 된다. 이처럼 크리스천 교육은 ‘닮음(imitation)의 신앙교육’이다. 하나님을 그대로 닮은 분이 예수님이다. 예수님의 인격을 닮으려 하고 그의 가르침대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제자들이다. 건강하고 아름다운 교회는 서로 다르지만 그 다름을 넘어서 서로 기꺼이 닮으려고 하는 성도들이 모인 곳이다. 목회자는 예수님을 닮으려 하고 성도들은 목회자를 모델로 생각하여 그의 인격과 신앙을 배우려한다. 이런 교회는 성장하고 부흥한다. 2세대들이 1세대들을 존경하고 기꺼이 닮으려고 하는 그런 교회가 아름다운 교회다. 이러한 관계의 단절과 닮음의 중단이 일어날 때, 교회는 냉랭하고 삭막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생명이 약동하는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고 다투고 분쟁하는 소리만 들리게 된다.

고대사회는 현대의 우리처럼 텍스트북이 따로 없었다. 인쇄 혹은 활자 문화의 시작을 알린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의 동판인쇄술이 발명되는 1500년 이전까지 인류 문화는 구전 혹은 구술문화였다. 인쇄문화는 불과 500년이 채 되지 않는다. 지금은 인쇄문화에서 매스 미디어 문화로, 매스 미디어 문화에서 SNS (Social Network Service) 문화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고대에는 소수의 사람들만 갈대 잎으로 만든 파피루스(papyrus) 텍스트를 읽을 수 있었다. 나머지 약 90% 이상의 사람들은 문맹자였다. 이런 까닭으로 삼라만상 자연이 텍스트북이었고 뛰어난 스승이나 영웅이 삶의 본보기였다. 구전으로 내려온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이 성도들의 교과서였고, 그의 발자취를 따라 살아가는 사도들의 인격과 가르침이 교회의 신앙교범이었다. 그래서 ‘닮음’이 신앙교육의 근간이 된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 분의 인격과 성품을 고스란히 닮아가는 과정이다. 초대교회는 본보기 교육을 통한 이런 거룩한 체화와 변화가 다반사로 일어났다.

선포를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참된 신앙과 인격을 품지 않은 선포는 변화를 촉발시키지 못한다. 성숙에서도 멀다. 신앙은 말과 행함으로 자라고, 말과 행함은 신앙으로 반듯해진다. 신언행(信言行)이 따로 노는 곳은 장터다. 그 셋을 굳이 일치시키려 애쓰지 않는 것이 장사꾼의 처세다. 교회는 장터가 아니다. 본보기가 사라진 교회는 황폐한 정원과 같다. 교회는 말씀이 선포되는 현장이면서 그 선포된 말씀대로 살아 본이 되어야 하는 역동적 생명터다. 말을 아끼고 말씀에 따라 무언의 본을 정직히 보일 때, 교회는 본질적 권위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

이상명 목사
(미주장로회신학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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