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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다시 미국 신학대학원에 들어갔다.
그동안 사역의 길을 걸어오면서 사람을 평가하는 여러 기준이 있다는 것을 경험했다. 어느 학교에서 공부했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어느 교단에 속해 있는지, 또는 얼마나 큰 교회에서 사역했는지가 때로는 한 사람의 능력과 사역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했다.
큰 교회에서 사역했다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작은 교회에서 사역한다는 이유로 그 사역까지 작게 바라보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플 때도 있었다. 나 역시 학교와 학위의 인정 문제로 그동안의 배움과 열심히 달려온 사역까지 인정받지 못하는 아픈 경험이 있었다.
그러한 경험은 오히려 나에게 다시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게 했다. 부족한 부분을 더 배우고 채우며 목회자로서, 그리고 한 영혼을 돌보는 사람으로서 더 잘 준비되고 싶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고 말씀을 바르게 배우며,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생명을 살리는 일에 더욱 성실하게 쓰임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품고 있을 때 예상하지 못했던 배움의 길이 열렸다. 다시 미국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돌아보면 그것 또한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배움의 자리로 이끄시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더 배우고 잘 준비되어 어디에서든 당당하게 사역하고 싶었다. 사람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학위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목회상담학과 ‘영성생활의 여정’을 공부하면서 내 안에 다른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왜 다시 공부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더 깊은 질문으로 이어졌다.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나는 학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지적인 성장은 중요하다. 성경과 신학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우고 연구해야 하며, 목회와 상담을 위해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훈련이 필요하다.
그러나 공부하면서 깨닫게 된 것이 있다.
지적인 성장만큼 영적인 성장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과 성경대로 살아가는 것은 다를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이 아는 것과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는 것도 같지 않을 수 있다. 말씀을 더 많이 배웠다면 나는 그만큼 더 겸손해지고 있는가. 사람에 대해 공부했다면 다른 사람의 아픔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사람을 더 사랑하고 있는가.
아무리 많은 지식을 가지고 좋은 학위를 받아도 한 영혼의 아픔을 품지 못한다면 내가 배운 신학은 내 삶에서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 것일까.
그러면서 ‘학위’의 의미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학교에서 받는 학위는 소중하다. 그것은 일정한 과정을 공부하고 훈련받았다는 증거이며 사역을 위해 준비해 온 과정의 열매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람에게 인정받는 학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이다.
사람은 내가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얼마나 큰 교회에서 사역했는지를 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많이 아는가보다 배운 말씀을 어떻게 살아내는지, 얼마나 큰 사역을 하는가보다 맡겨 주신 한 영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사람들에게 얼마나 인정받는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정직하고 충성스럽게 살아가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내가 평생 받고 싶은 또 하나의 ‘학위’가 생겼다.
사람이 주는 학위가 아니라 삶으로 받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학위’이다.
그 학위에는 어느 학교의 이름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기록될 것이다. 얼마나 사랑하고 용서했는지, 한 영혼의 아픔 곁에 얼마나 함께했는지, 맡겨진 작은 일에도 얼마나 충성했는지, 그리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얼마나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 갔는지가 더 중요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의 길도 다르게 바라보게 된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형편이 다르다. 누군가는 교단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누군가는 미국 신학교에서 공부한다. 누군가는 큰 교회에서 사역하고, 누군가는 작은 교회에서 한 영혼을 돌보며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킨다. 그 길의 모양은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부르심까지 크고 작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에베소서 4장 11~12절에는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세우셨다고 말씀한다. 고린도전서 12장에서도 교회를 한 몸에 비유하며 서로 다른 지체가 한 몸을 이룬다고 말씀한다.
오늘날에도 어떤 사람은 목회자로, 어떤 사람은 교사로, 선교사로, 상담자로 하나님을 섬긴다. 또 어떤 사람은 찬양과 복지, 직장과 사업의 현장에서 자신의 은사로 하나님을 섬긴다.
자리와 역할은 다르지만 목적은 하나이다.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고, 생명을 살리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번 영성생활의 여정에서 가장 마음에 남았던 하나님의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네가 어디 있느냐?”
에덴동산에서 아담을 찾아오셔서 물으셨던 하나님의 질문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질문처럼 들린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어느 학교에 있는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물으시는 것 같다.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해 달려가고 있는지,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지식을 쌓는 데만 관심을 두고 있는지, 아니면 그 배움을 통해 내 영혼도 함께 성장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신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공부의 의미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나는 계속 배우고 싶다. 신학적으로 더 깊어지고 목회와 상담을 위해 필요한 지식도 충실하게 배우고 싶다. 그러나 머리가 자라는 만큼 마음도 자라고, 지식이 깊어지는 만큼 믿음과 사랑도 깊어지기를 원한다.
많이 알수록 더 겸손해지고,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사람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목회자라는 이름보다 목회자다운 사람이 되고 싶고, 상담자라는 이름보다 상처 입은 사람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영성생활 상담을 배우면서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성령님이심도 다시 배우게 되었다. 모든 답을 주려고 하기보다 한 사람의 곁에서 함께 걸으며 성령님께서 일하실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리고 많이 배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것은 배운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배우는 것보다 실제로 사랑하는 것이 어렵고, 용서를 아는 것보다 실제로 용서하는 것이 어렵다. 겸손을 말하는 것보다 낮아지는 것이 어렵고, 한 영혼이 소중하다고 말하는 것보다 실제로 그 사람의 곁을 지켜 주는 것이 더 어렵다.
그래서 나는 지식만 쌓아 가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말씀이 삶이 되어 가는 사람이고 싶다고 기도한다. 좋은 목회자나 좋은 상담자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고 고백한다.
나는 다시 미국 신학대학원에서 배우고 있다.
이곳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학위를 받는 것도 소중하다. 그러나 이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졸업장 하나만이 아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학위와 함께 하나님께 인정받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학교의 학위에는 졸업이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의 배움에는 졸업이 없는 것 같다. 평생 배우고, 배운 것을 삶으로 살아내며,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계속해야 할 나의 공부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하나님 앞에서 묻는다.
“주님, 저는 지금 어디에 서 있습니까?
그리고 저는 어떤 사람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보다 하나님 앞에서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언젠가 나의 삶과 사역을 돌아보았을 때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학위를 받았는지, 얼마나 큰 자리에서 사역했는지보다 내가 배운 말씀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한 영혼을 얼마나 귀하게 여겼는지, 그리고 그 길을 걸으며 얼마나 예수님을 닮아 갔는지를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어쩌면 그것이 내가 평생 받고 싶은 가장 귀한 ‘학위’이며,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배움의 자리로 이끄신 더 깊은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양미림 목사 / 뉴욕샬롬교회/ 목회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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