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 October 16, 2026   
정(情)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08/10/26       김명욱목사

정(情)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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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情)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정(情)을 사랑이라 말할 수 있을까. 한국 사람 특유의 정은 말로 표현하기란 참 어렵다. 살다 보면 고운 정, 미운 정 다 든다는 말이 있듯이 정은 다른 무언가를 담고 있는 듯하다. “당신 없인 못 살아” 하며 죽도록 사랑할 것 같은 두 사람이 결혼한 지 몇 년 안 가 “내가 당신을 언제 봤냐!”는 식으로 이혼하는 그런 사랑도 있다.

그러나 정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미운 사람이라도 정이 깊이 들면 쉽게 헤어지질 못한다. 곰보도 정이 들면 곰보 자리 하나하나에 사랑이 듬뿍 담긴다는 말이 있듯이 정은 사랑과는 좀 다른 무엇이 있다. 태양같이 뜨거운 사랑이라면 보름달같이 푸근하고 은은한 정이라 할까. 쉽게 헤어질 수 없게 하는 것이 정인 것만은 확실하다.

이렇게 정이 든 사람들이 본의 아니게 헤어져야만 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인가. 2015년 6월 1일, 458명이 탄 중국 여객선이 양쯔강 중류에서 침몰해 완전히 거꾸로 뒤집혔다. 10여 명은 구조됐으나 400여 명은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배가 침몰하기 전 우젠창 씨(당시 58세)와 아내는 제2의 허니문 여행으로 배에 타고 있었다. 배가 점점 흔들리자 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간구하고 있었다. 그런데 배가 크게 기울면서 객실 내 침대들이 넘어졌다. 이어 강물이 들이닥쳤고 두 사람은 서로 손을 더욱 꼭 잡았다. 하지만 경사각이 더 커지면서 아내가 휩쓸려 온 침대 밑에 깔리고 말았다.

불어난 물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게 했다. 우 씨는 빨리 배에서 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아내의 손을 더 당겼다. 그러자 침대 밑에 깔린 아내가 “여보, 제 손을 놔요!”라며 스스로 손을 풀어 버리고 말았다. 이때 세찬 물이 들이닥치면서 우 씨와 아내는 서로 갈라졌고 우 씨는 물에 떠밀려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왔다.

헤엄을 치고 살아난 우 씨는 6월 4일 중국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내가 마지막 순간 내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을 수 없을 것”이라며 통곡을 했다고 한다. 아내의 정. 아내가 남편을 살리게 한 이 정보다 더 깊은 정이 또 있을까. 타이타닉에서의 두 연인 중 남자가 여인을 살리고 죽은 것과 비교되는 장면이다.

행복전도사로 널리 알려졌던 최윤희 씨. 그가 방송에 나오면 청취자들은 항상 즐거웠다. 그러던 그녀가 2010년 10월 7일 남편(72세)과 동반 자살을 했다. 그녀의 나이 63세. 방송에서 “아무리 힘들어도, 밥을 굶어도 희망은 굶지 말라”고 했던 희망의 전도사였던 그녀. 그녀는 자살하기 전 수년 동안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란 합병증인 지병을 앓고 있었다.

우리를 놀랍게 한 건 자살 방법이었다. 남편이 최윤희 씨를 도와 먼저 숨지게 했다. 그다음에 남편도 목숨을 스스로 끊고 아내의 뒤를 따랐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남편은 70대라도 아주 건장했다고 한다. 깊은 정이 든 아내를 저세상으로 보내고 난 남편의 마음. 그녀를 따라 함께 죽음을 택한 남편의 정. 얼마나 깊은 정이랴.

한국의 슈바이처, 바보 천사라 불리었던 장기려 박사. 1948년 북한의 제1호 의학박사다. 그는 6·25동란 중이던 1950년 12월, 평양의과대학부속병원에서 부상당한 국군 장병들을 돌보다 어쩔 수 없이 국군 버스를 타고 피난길에 올랐다. 아내 김봉숙 씨와 다섯 자녀들과는 이렇게 헤어졌다. 그는 이남에 내려와 의술을 펴면서 빛바랜 가족사진 한 장을 들고 평생 아내를 그리며 혼자 살다 1995년 86세로 세상을 떠났다.

요즘 가장 뜨거운 영화 중에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디세이(Odyssey)’가 있다.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영화화한 작품이다. 주인공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와의 전쟁 10년, 전쟁에 승리한 후 귀향까지의 10년, 20년을 보낸 후 왕후인 페넬로페를 만난다는 내용의 영화다. 남편 오디세우스를 만나기 위해 20년 동안 절개를 지킨 아내 페넬로페. 그들에게도 정이 있었나 보다.

재혼의 권고를 끝까지 마다한 장기려 박사의 아내를 향한 정. 감히 누가 흉내 내랴. 우젠창 씨 아내의 손 뿌리침. “여보, 이젠 제 손을 놔요!” 아내의 정이 남편을 살렸다. 최윤희 씨를 따라 함께 세상을 하직한 남편의 정. 말로 표현할 길이 없다. 20년 만에 다시 재회한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 “우린, 사랑보다 정(情)으로 살아요!”란 어느 부부의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 13장)

정(情)도 이 사랑에 포함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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